[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3년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는 예상대로 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은 가운데 결국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다.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라는 후한 대접을 받은 데다, 팀의 취약점이 중견수에 좌타자인 만큼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에도 안성맞춤인 구단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이기도 했다. 명분, 실리 다 완벽했다.
그런 이정후는 계약이 확정될 때쯤 입단식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새 홈구장이 된 오라클파크를 찾았다. 입단식 전후로 기분을 내보기도 할 법한데, 이정후는 그렇지 않았다. 입단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오라클파크의 웨이트 시설을 찾아 그날 해야 할 훈련을 했던 것이다. 비시즌이라 경기장에 동료 선수들은 없을 것 같았지만, 마침 팀 외야수인 오스틴 슬레이터(32)가 훈련 차 나와 있었다.
이정후는 슬레이터와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쩌면 이정후가 처음 만나는 팀 동료였다. 또한 포지션도 외야수라는 점에서 동질성이 있었다. 슬레이터는 팀의 주전 선수는 아니지만,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뷔해 지난해까지 550경기를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뛴 선수다. 클럽하우스에서 꽤 영향력이 있을 법한 경력이다. 그리고 슬레이터는 당시 이정후와 대화가 충격적이었다고 떠올린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방송국인 ‘KNBR’은 12일(한국시간) 자사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슬레이터를 패널로 초대했다. 슬레이터는 이 자리에서 이정후와 만났던 순간, 그리고 이정후에게 느낀 강렬한 기억을 되새기며 청취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슬레이터는 대화를 나눌수록 이정후의 인성이 훌륭했다고 떠올리면서, 이정후가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슬레이터는 이정후의 그날 가장 중요한 일정이 기자회견이었는데도 훈련 시설에 나온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슬레이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훈련하는 것 같았다”고 놀라워했다. 슬레이터는 이정후가 운동은 물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면서 “그는 좋은 팀 동료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슬레이터가 가장 놀란 것은 이정후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보통 그것을 미덕으로 삼지만, 서양의 문화는 조금 다르다. 슬레이터로서는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이정후의 그런 태도에서 좋은 인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슬레이터는 “그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신인처럼 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놀라워하면서 “거기서 넌 MVP 아니었느냐고 반문했다”고 껄껄 웃었다.
슬레이터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고, 다른 팀 동료처럼 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훌륭한 태도와 자세는 매우 행복했다. (이정후는) 정말로, 정말로 인성이 좋은 친구처럼 보인다”면서 “그래서 그가 클럽하우스에 왔을 때 나는 항상 긍정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이정후의 팀 적응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샌프란시스코 및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단순히 오랜 기간 이정후의 기량만 체크한 게 아니다. 그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클럽하우스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동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리더인지를 물밑에서 면밀하게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후는 기량뿐만 아니라 이런 측면에서도 만점을 받은 끝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확신을 살 수 있었다. 슬레이터도 그런 점을 느꼈던 것이다.
이정후의 뛰어난 기량을 이미 확인했다고도 말한 슬레이터다. 조직에서 매우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며 팬들도 그를 사랑할 것라는 진행자에 말에 슬레이터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훌륭한 선수를 추가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두 배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샌프란시스코 팬들이 이것에 흥분하길 바라고, 나도 그런 것을 알기에 그와 함께 뛰게 돼 흥분이 된다”고 고대했다.
가벼운 농담도 덧붙였다. 슬레이터는 “나를 중견수 바깥으로 밀어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라면서 폭소했다. 슬레이터는 경력 내내 외야 전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올해도 샌프란시스코의 외야 전 포지션에서 백업 1순위는 슬레이터다. 다만 원래는 코너 외야수였던 슬레이터는 최근 팀 사정상 경력 초기에는 잘 뛰어보지 않은 중견수에서 뛰는 일이 많았는데 이정후의 가세로 그럴 일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게 선발 중견수 및 리드오프를 맡길 가능성이 크고, 지난해 최약체였던 중견수 포지션의 공격력과 수비력이 모두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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