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 연령 높아지며 최근 10년간 3명 태어날 때 1명꼴로 유산
전문가 “젊은층 난임에 관심 긍정적…남성도 관심 가져야”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당장은 임신 계획이 없는데도 유산, 시험관 시술, 난자 동결 등 난임 극복기를 담은 개인 유튜브를 찾아보는 20대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기혼 여성들로 한정됐던 해당 콘텐츠의 주 시청자층이 미혼 여성들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난임과 유산에 대한 체감도가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임신 계획이 없지만 유산 관련 영상을 종종 본다는 대학원생 김모(29)씨는 “몸이 차고 부인과 질환도 있는 만큼, 유산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느껴져서 나중에 난임일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찾아본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개인 채널에서는 난임의 여정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어서 유익하다는 평가다.
김씨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주로 임산부가 고생 없이 아이를 낳아 문제없이 키우는 것만 보여주는데, 유튜브를 보면 임신과 출산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런 난임 극복기를 담은 영상이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배경에는 초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난임과 유산이 늘어나는 상황이 있다.
실제로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10명 중 2명꼴로 유산 경험과 과체중 등 이유로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인제대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팀이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임신 준비 지원 사업에 참여한 20∼45세 여성 2천274명을 분석한 결과, 19.48%(443명)가 난임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산이 흔해진 와중에도 아이를 떠나보낸 경험을 일상 대화로 꺼내기는 여전히 민감한 만큼, 젊은 여성들은 주변 지인보다는 온라인에서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영상을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유산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아 안녕, 다시 만나자’, ‘지난 1년간 겪은 나의 유산 이야기’, ‘첫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우리 아가 미안하고 사랑해’ 등의 제목으로 업로드된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남편과 함께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고 부모님에게 소식을 알리는 모습부터 병원에서 유산 판정을 받고 슬픔에 잠기는 모습까지를 담아낸다. 임신 전 건강 상태, 앓았던 부인과 질환 등도 함께 공유한다. 이런 영상은 주로 해당 채널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2022년 9월 첫 임신 준비를 하던 정가희(32)씨는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계류 유산 및 이후 재임신 경험을 공개했다. 계류 유산은 임신 초기에 사망한 태아가 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궁 내에 잔류하는 경우를 말한다.
많은 이들의 위로를 받고 마음이 치유됐다는 정씨는 “난임과 유산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여성들을 위해 영상을 올렸는데, 막상 올리고 나니 제 속상함을 달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약 1년 뒤인 지난해 9월 소중한 아들이 찾아왔다.
유산 후 다시 임신에 도전하면서 재임신에 도움이 되는 운동과 음식을 추천해주는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시험관, 인공수정 등 난임시술 후기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추세다.
미혼 직장인 여성 장모(28)씨는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훗날 노산을 대비해서 난자 동결에 관한 유튜브를 찾아보고 있다”며 “주변에 직접 물어보기 껄끄러운 것도 많아서 개인 방송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임기 청년이 유산과 난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난임 시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교수인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은 “30대에 접어들면 사실상 ‘난임 예비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임력이 급격히 저하된다”며 “임신 계획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20대 때부터 유산과 난임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남성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 센터장은 그러면서도 난자 동결, 시험관 시술을 통해 쉽게 난임을 극복하는 것처럼 미화하는 콘텐츠는 유의해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에서 연예인들의 노산을 가볍고 긍정적으로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그와 다른 상황에 놓인 난임 여성들이 크게 좌절하곤 한다”고 전했다.
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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