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인체에 유해한 원료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및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2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환경단체와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은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형량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는 전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홍지호(74)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65) 전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법정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이들은 각 회사에서 CMIT·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해 98명에게 폐 질환이나 천식 등을 앓게 하고 그들 중 12명을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고 지난 2019년 7월 기소된 바 있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회사 관계자 등 11명에 대해서는 금고 2년∼3년 6개월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내려 공소사실 기재 업무상 과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 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불특정 다수가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큰 고통을 겪었고 상당수 피해자는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는 등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피해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적·사회적 비용이 소요된 것은 물론 완전한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볼 때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지난 2021년 1월 1심에서는 CMIT·MIT 성분이 폐 질환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어진 2심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고려하면 CMIT·MIT가 폐 질환 및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 질환 등의 구체적 인과관계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이 지난 1994년 독성 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내부의 의견을 듣지 않고 CMIT·MIT 성분 제품을 첫 출시한데 이어 이듬해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어 실험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계속 판매를 진행했다고 짚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유공이 제품 출시 이후인 지난 1995년 7월 서울대의 실험 결과에는 백혈구 수치 감소 등 유의미한 변화로 인해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지난 2002년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될 당시에도 제기된 의문을 언급하지 않아 업무상과실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유공은 판매중지나 회수조치를 하지 않은 채로 판매를 이어갔고, 이로 인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이 이어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게 됐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 판결의 결론은 ‘만일 그때로 다시 돌아갔더라도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형사재판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1심과 다른 2심의 유죄 선고는 다행이지만 형량에는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검찰의 구형량인 금고 5년은 이번 피해자의 규모와 심각함을 볼 때 솜방망이인데 그 형량에도 못 미쳤다”며 “이제 이 사건은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확정하는 절차만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이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며 “또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한 축인 정부책임도 물어져야 하며 진상규명 피해대책과 함께 제대로 된 재발방지 조치도 시급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이자 8.31사회적가치연대 채경선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만감이 교차했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해결로 가는 과정에서는 항상 기쁨과 슬픔이 오고 간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재판부가 어떤 형량을 내려도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지만,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은 다행”이라며 “다만 판결 중에 이마트 관계자들도 금고형 집행유예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이유가 ‘영업상 비밀 사유로 유해성 검사를 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인정되는 등 다소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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