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 인수 이후 잠잠한 대형 M&A…올해 가시화 기대감 UP
‘뉴삼성’ 감안한 AI, 로봇, 전장, 헬스케어 등 성사 가능성
“올해는 뭔가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한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삼성의 인수·합병(M&A) 구체적 시점을 언급하면서 2017년 하만 이후 긴 공백을 깨고 ‘빅딜’이 성사될지 관심이다.
‘기술 자국주의’ 등 글로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그간 반도체 업체간 합병은 번번이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삼성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과 융합할 수 있는 AI(인공지능), 로봇, 전장 등 신성장 영역을 중심으로 M&A를 추진,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한종희 부회장은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삼성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대형 M&A는 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수 년전부터 M&A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피력해왔다. 2021년 1월 진행한 연간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주주환원 정책 기간(2021~2023년) 중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실현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높였었다.
한 부회장도 지난해 CES 간담회에서 “완제품(세트)과 부품 모든 부문에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해 조만간 ‘메가딜’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이처럼 경영진들이 대형 M&A 계획을 공식적으로 언급했지만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행보는 없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경제 안보 기조가 강화되면서 M&A 기류가 크게 바뀐데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크게 휘청이면서 인수·합병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간 잠정 영업이익은 6조5400억원으로 전년과 견줘 84.92% 추락했다. 삼성전자가 6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낸 것은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던 2008년(6조319억원) 이후 15년 만으로, 극심한 반도체 불황에 기인했다. 업게 안팎에서는 DS(반도체) 부문에서 14조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고금리·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인수 부담이 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삼성은 국내 기업중에서도 두둑한 실탄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할 마음만 먹는 다면 그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3분기 말(연결)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단기상각후원가금융자산·장기 정기예금 등 포함)은 약 93조원이다. 대형 M&A에 필수적인 자금력은 충분하다. 계열사까지 동원하면 실탄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삼성이 인수 시동을 걸지 않았던 것은 반도체가 첨단전략물자로 떠오르면서 규제당국들이 기업간 합종연횡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초 미국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암)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미국·영국 등 주요국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작년 낸드플래시 반도체 세계 2위 업체 일본 키옥시아(구 도시바메모리)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간 합병 시도 역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쳐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삼성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향후 국가 경쟁력으로 부각될만한 신성장 산업에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 지난해 로봇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했고, 삼성의 전장·오디오 자회사인 하만은 음악 관리·검색·스트리밍 플랫폼 ‘룬’을 전격 인수했다. 같은 해 삼성디스플레이는 미국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기업인 이매진(eMagin)을 약 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부회장도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 핀테크, 로봇, 전장 등 5개 분야에서 최근 3년간 260여개 회사에 벤처 투자를 진행했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중소 M&A와 벤처 투자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부회장이 언급한 사업 부문은 모두 미래 먹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산업인만큼 공통적으로 반도체와의 시너지가 예상된다. 당장 오는 17일 내놓는 갤럭시 S24시리즈는 ‘생성형 AI’ 기술을 탑재한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이어서, 글로벌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아울러 8일(현지시간) 프레스 콘퍼러스에서는 AI 컴패니언(동반자) 로봇 ‘볼리’를 깜짝 공개하며 삼성의 자체 생성형 AI 기술을 과시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삼성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보핏’은 로봇과 헬스케어 분야에 안성맞춤이다. 해당 로봇은 실버타운, 피트니스, 필라테스 등 기업 간 거래(B2B) 위주에서 시작해 일반 소비자(B2C)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장에서는 최근 현대차 그룹 자회사인 포티투닷과 손잡고 삼성 반도체를 통해 인공지능 기반 SDV 플랫폼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것이 최근 성과다. 공개 시점은 내년이다. 양사는 전장용 SoC(시스템온칩) 및 오토 제품 확대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이같은 신성장분야의 잠재 성장률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이 분야 시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기업 지분 투자 및 M&A에 최대한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 워낙 다양한 만큼 ‘메가딜’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수준의 협력 강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황이 빡빡하기는 해도, 시장 잠재력 및 사업간 시너지가 확실시 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앞서 반도체·바이오·신성장 정보기술(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이들 분야에 대한 추가 투자를 검토할 수도 있다.
다만 현재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주요 규제 당국이 기술 우위를 가진 국내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기술 독점 우려가 덜 미치는 분야를 중심으로 기회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에서는 후공정(패키징)에서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패키징은 제조된 반도체를 기판이나 전자기기 등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3D 패키지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활용하면 이전 보다 많은 데이터 양을 처리하고, 전달 속도도 높일 수 있다.
반도체 뿐 아니라 배터리, 바이오, 통신, 메타버스 등에도 전략적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첨단기술 확보전에 나설 것으로도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날 새해 첫 경영행보로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 현장을 택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6G는 AI를 내재화해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더 넓은 네트워크 범위를 제공하며 ▲AI ▲자율주행차 ▲로봇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반기술이다.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 독점 우려가 덜 하면서도 신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차세대 기술 확보에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이 구체적인 M&A 시기를 거론한 만큼, 이미 언급했던 분야에서 유의미한 딜이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조주완 LG전자 CEO도 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M&A, 파트너십 등 외부 성장(Inorganic)의 기회를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AI, MR(혼합현실) 등 게임체인저 영역은 물론, 기존 사업 고도화 관점에서 시너지가 기대되는 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올해 전자 대기업들의 신성장 분야 투자 소식이 연이어 들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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