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2024년 새해가 시작했으나 건설업계는 좀처럼 희망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업계 30위권 이내 1군 건설사가 10년 만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장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올해도 내수 건설 경기가 부진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는 규제를 풀어 SOC 등 투자 활성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해외수주 등에서 활로를 모색하려는 구상을 내놓았다.
◆ 태영건설 워크아웃 승인 고비 넘는다
연말연시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업계까지 긴장하게 만든 태영건설 사태에서 워크아웃 승인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는 모양새다. 다만 추가 자구안 제시 등 변수가 남아 11일 예정된 채권단협의회에서 실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영그룹은 8일 산업은행이 요구한 890억 원을 태영건설에 투입하면서 채권단과 대화의 여지를 마련했다. 애초 자구안에 들어있던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의 사용법을 놓고 양쪽의 의견이 달랐는데 일단 태영그룹이 한 발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태영그룹이 추가 투입한 890억 원 중 일부는 계열사와 오너일가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마련됐다. 이날 티와이홀딩스는 계열사 블루원으로부터 100억 원, 윤재연 블루원 대표로부터 330억 원을 빌렸다고 공시했다.
태영그룹이 채권단과 협상에 물꼬는 텄으나 결국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추가 자구안에 달린 것으로 파악된다. 채권단이 수용할 수 있는 추가 자구안을 태영그룹이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시장에서는 윤석민 회장과 윤세영 창업회장 등 오너일가가 보유한 티와이홀딩스 지분 담보제공 또는 매각 등을 거론하고 있다. 현재 티와이홀딩스는 윤석민 회장이 지분 25.4%, 윤세영 창업회장이 지분 0.5%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지분 33.7%를 들고 있다. 현재 이 가운데 담보가 설정된 지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채권단 일부는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SBS 지분 36.92% 역시 추가 자구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오너가 방송사업에 애착이 큰 데다 SBS 지분 처분은 방송통신위원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제약이 있 기에 자구안에 포함되긴 쉽지 않은 것이란 의견이 많다. 워크아웃 개시를 섣불리 점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태영건설은 2023년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에서 16위를 차지한 1군 건설사이지만 지난해 내내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면서 업계에서 우려 섞인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1월 계열사 에코비트 지분을 담보로 사모펀드 KKR로부터 13%의 높은 이율로 4천억 원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 한국투자증권과 2800억 규모 금융상품 조달협약을 맺었다. 이후에도 단기차입과 계열사 매각 등으로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전망은 꾸준히 나왔다.
위기설이 확산하자 태영건설은 90세의 윤세영 창업회장이 경영복귀를 선언하며 직접 대응에 나섰지만 끝내 워크아웃 신청을 피해가지 못했다.
태영건설 사태는 가뜩이나 불안한 부동산 PF 시장 전반을 향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증권사와 연구기관 등이 부동산 PF 점검에 나섰고 금융당국도 부동산 PF 상황 점검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브릿지론 30억 원, 본PF 100조 원 등 130조 원가량으로 추정됐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이 가운데 최대 70조 원 이상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PF 대출잔액 중 브릿지론은 70%, 본PF는 50% 정도가 상반기 만기연장됐는데 부동산 침체로 수익성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사업장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부동산PF 부실에 따른 시장 충격이 적지 않을 듯”이라며 “대출상환 청구가 본격화될 경우 다수 건설사가 부도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여러 사업장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면서 대주로 참여했던 적지 않은 금융기관들이 동반부실화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태영건설과 유사하게 시장에서 부실 가능성이 제기된 건설사들은 적극적 대응으로 시장의 우려를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건설은 4일 보도자료를 내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금성자산을 2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고 올해 만기 도래 채무 1조8천억 원 대부분 연장 협의를 완료했다는 것이다.
롯데건설은 또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PF 3조2천억 원 가운데 2조4천억 원은 이달 안에 장기 조달구조로 연장하고 8천억 원은 1분기 내로 본PF로 전환해 우발채무를 해소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부건설도 5일 지난해 4분기에 3천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해 재무안전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PF 우발채무 규모가 작아 위험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하반기 현금성자산이 감소한 것은 고금리 채무증권과 차입금 상환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 정부 건설산업 정책 투자활성화에 방점
올해 건설업계는 불황이 예상된다. 특히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가 보여주듯 경기부진과 고금리 등으로 자금조달이 버거운 상황에서 국내 건설경기는 좀처럼 활로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건설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관련 규제를 풀어 투자여건을 개선하고 주택공급 노력도 이어간다.
SOC 사업을 중심으로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률을 역대 최고 수준인 65%까지 높이기로 했다. 민자사업 보상급을 선투입하고 국가계약 한시특례를 연장해 SOC 신속집행을 지원한다. 상반기 공공투자 집행률 목표로 역대 최고치인 55%로 잡았다.
2024년 한시적으로 비수도권 개발부담금을 100%, 학교용지부담금을 50% 감면하고 민간 공동주택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시행도 1년 늦춘다. 건설사 유동성 부담완화를 위해 세제지원’규정정비’공기업 역할 강화 등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년 연장하고 범부처 지역투자지원 TF를 중심으로 지체된 기업투자 프로젝트를 지속발굴해 신속 가동을 지원한다. 경제단체’협회, 지자체와 협업해 투자애로를 해결하는 투자익스프레스를 신설해 투자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외국인투자 현금지원 예산을 확대하고 전담조직을 강화해 외국인투자 유치에도 박차를 가한다.
거점지역 육성을 위해 기회발전특구를 지정하고 지자체가 직접 규제특례를 설계하도록 한다. 교육발전특구’도심융합특구 등을 통해 지역인재 양성과 5대 광역시 복합개발을 추진한다.
인구감소지역에는 부활 3종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기존 주택 보유자가 인구감소지역에 신규 주택을 취득할 때는 1주택자로 간주해 재산세’종부세’양도세를 적용한다. 인구감소지역에 창업하거나 사업장을 설치하는 기업에게 취득세를 면제하고 지방세 감면도 허용한다. 외국인 유입을 지원하고 의대 정원 확대 와 연계해 정주인구를 확대한다.
인프라’방산’원전 등 건설을 포함해 해외수주 목표를 570억 달러로 잡았다. 수출입은행 자본금을 확대해 초대형수주 특별프로그램 신설을 검토하는 등 해외수주를 전폭지원한다. 대형수주 프로젝트에 민간금융 참여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국가별’프로젝트별 맞춤형 수주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통해 해외수주 방식을 도급에서 투자개발로 선진화한다. 제2중동붐 확산을 위해 수주영업과 사업집행 단계별로 지원을 강화하고 원전 유망수주국에 전략적 협력채널을 강화한다.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3기 신도시 조기착공 등 공공부문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국토부는 1월 중으로 도심 등 다양한 주택 공급 내용을 담은 종합대책도 발표한다.
인허가를 한번에 처리하는 통합심의를 의무화하고 교육영향평가 등 기타 절차도 인허가 전 완료하도록 관리한다. 정비사업은 온라인 총회와 전자 의결을 도입해 사업기간을 단축한다. 공사비 갈등이 발생했을 때 분쟁조정제도 적용을 활성화하고 공사비 상승을 반영하는 민관 공동사업 모범사례를 마련해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
또 정부는 건설업계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PF 연착륙에도 힘을 쏟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85조원 수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조속히 집행하고 필요시 유동성 공급을 추가 확대한다.
준공기한이 지난 시공사는 책임분담을 전제로 대주단협약을 통해 채무인수 시점 연장을 독려한다. 책임준공보증 집행, 비주택PF 보증 신설, 건설사 특별융자 등 건설공제조합을 통해 유동성 지원을 강화한다.
PF사업장별로 애로요인을 점검해 정상사업장은 적시 유동성 공급과 함께 과도한 수수료 책정 등 불합리한 사항 시정을 유도한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은 LH가 매입해 직접 시행하거나 다른 회사 매각을 추진해 정상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사업성이 부족한 곳은 PF 정상화 펀드에서 매입 및 재구조화를 추진한다. PF 정상화 펀드(PFV)가 부동산을 매입할 때 한시적으로 취득세를 50% 감면해준다.
이밖에 부동산 PF 시장 안정성 제고를 위해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부동산 개발사업 추진방식 등 근본적 개선을 도모한다. 수분양자 보호와 부동산 공급능력 확충을 위해 토지신탁 내실화 방안도 1분기 중에 마련하기로 했다. 김디모데 정책&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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