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글래드스톤, 미 원주민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수상 소감도 부족 언어로 먼저 해
‘배우·작가 파업’ 상처 봉합 차원서 할리우드 스타 대거 참석…’나눠주기 시상’ 지적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올해 미국 영화상 시즌의 막을 올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옛 영광’을 일부 되찾은 모습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대체로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해 수개월간 이어진 배우·작가들의 양대 파업으로 할리우드가 큰 혼란을 겪은 뒤 영화계 인사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인 자리였다.
이를 의식한 듯 수상 후보에 오른 인기 배우와 감독들이 거의 총출동해 시상식을 빛냈고, 수상자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 진행자 조 코이, 80세 로버트 드니로에 ‘득녀’ 관련 농담
시상식 진행자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 조 코이(52)는 무대를 열며 여러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기려 노력했다. 지난해 7번째 아이를 얻어 화제가 된 배우 로버트 드니로도 이를 비켜가지 못했다.
80세인 드니로는 지난해 4월 여자친구 티퍼니 첸과 사이에서 딸을 출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이는 자신이 드니로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뒤 객석에 앉은 그에게 “어떻게 80세에 그녀(여자친구)를 임신시켰느냐”고 물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드니로는 약간 당황한 듯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을 받아넘겼다.
코이는 또 영화 ‘오펜하이머’의 상영 시간이 너무 길다면서 “새해 전날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2025년에 영화를 끝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역시 이를 웃어넘겼다.
코이는 이날 TV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앨리 웡) 등 3관왕을 차지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놓고는 “여기 온 후보들에게 모든 작품을 다 봤다고 거짓말했지만, 사실은 ‘성난 사람들’만 봤다. 나는 아시아인이니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코이는 필리핀계 미국인이다.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다.
◇ 릴리 글래드스톤, 미 원주민 배우로는 첫 여우주연상
이날 특히 주목받은 수상자는 영화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릴리 글래드스톤이었다.
그는 아네트 베닝과 캐리 멀리건 등 쟁쟁한 스타들을 물리치고 이 상을 거머쥐었다.
글래드스톤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상대 역인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을 연기했다.
디캐프리오는 글래드스톤의 수상에 큰 박수를 보내며 그가 무대에 오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미 원주민 출신 배우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최초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실제로도 원주민 출신인 글래드스톤은 자기 부족인 블랙피트 네이션의 언어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이어 영어로 “이것은 역사적인 승리”라며 “나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주관사 바뀐 뒤 첫 시상식…일부 진행 실수도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과거 이 상을 주관한 미국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해체되고, 영리 기업인 딕 클라크 프로덕션과 투자회사 엘드리지 인더스트리가 만든 합작회사로 운영권이 넘어간 뒤 처음으로 열린 행사다.
골든글로브는 2021년 HFPA의 인종·성 차별 논란, 운영진의 부정부패 의혹 등이 불거지며 영화계의 보이콧 대상이 되고 이듬해 생중계 방송마저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쇄신을 꾀했고 올해는 주관사가 아예 바뀌면서 한층 활력을 되찾은 분위기다.
주관사는 이번 시상식부터 심사위원 규모가 기존의 3배인 300명 규모로 확대됐으며, 이들의 출신 국가도 6개 대륙 75개국으로 다양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날 시상식에서는 일부 진행상의 실수도 발생해 미숙한 운영으로 지적받았다.
배우 윌 페럴과 크리스틴 위그가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영화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를 호명하던 중 갑자기 엉뚱한 음악이 세 차례나 반복해서 흘러나와 시상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두 배우는 마지막 음악이 흘러나올 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동작으로 좌중을 웃게 했다.
페럴은 “골든글로브는 변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주최 측의 미숙한 진행에 일침을 놨다.
지나친 ‘나눠주기’ 시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골든글로브상은 여러 영화와 TV 시리즈에 골고루 돌아갔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5개 부문에서 수상한 것 외에는 크게 압도적인 작품이 없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골든글로브 투표자들은 수상작을 널리 퍼뜨렸고, 5개의 영화가 최소 2개의 트로피를 각각 수상했다”며 “골든글로브는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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