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美공군대학 펴낸 ‘중국 로켓군 보고서’ 방아쇠 역할
상장 7명 포함 소장 이상 고위 장성 30여명 비리혐의 낙마
시진핑 인민해방군 현대화 작업 핵심 요소 로켓군 주 타겟
외침 막는 ‘국가 군대’아닌 충성 강조하는 ‘당의 군대’인 탓
중국 군부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들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대표직에서 무더기로 파면된데 이어 군 수뇌부의 상당수가 부정부패에 연루돼 낙마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는 “올해에 부정행위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해 향후 추가 피바람을 예고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중국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 9명이 비리에 연루돼 전국인대 대표직에서 면직됐으며 로켓군과 국유 군수업체 수뇌부 상당수가 비리에 연루돼 낙마했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 등이 지난 5일 보도했다. 홍콩 성도일보(星島日報)에 따르면 낙마한 인민해방군 장성은 상장(우리나라 대장격)만 7명에 이르는 등 소장 이상이 30여명에 이른다.
전국인대는 앞서 지난달 29일 공고를 통해 중앙군사위원회(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대표 장전중(張振中)과 장비발전부 대표 장위린(張育林)·라오원민(饒文敏), 해군 대표 쥐신춘(鞠新春), 공군 대표 딩라이항(丁來杭), 로켓군 대표 뤼훙(呂宏)·리위차오(李玉超)·리촨광(李傳廣)·저우야닝(周亞寧) 등 9명을 파면했다고 알렸다.
이번 파면 인사에는 로켓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이 대거 포함됐다. 부사령관 출신인 장전중은 물론 리위차오·저우야닝·리촨광 등은 모두 로켓군에서 고위직을 지냈다. 장위린·라오원민·쥐신춘은 장비조달을 맡은 장비발전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딩라이항은 베이징(北京) 서자오(西郊)공항과 관련된 공사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파면 결정이 로켓군 부패 스캔들과 무관치 않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다 전국인대 대표를 겸하지 않았지만 군사장비 조달과 무관치 않은 전략지원부대 사령관 쥐첸성(巨乾生) 상장, 해군 부사령관 펑단위(馮丹宇) 중장, 북부전구 해군사령관 왕다중(王大忠) 중장 등도 낙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인민해방군 현대화 작업의 핵심 요소인 로켓군 등 군부를 겨냥한 숙청 바람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최고 정책자문 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정협)도 27일 우옌성(吳燕生) 중국항천과기(中國航天科技)그룹 회장, 류스취안(劉石泉) 중국병기공업(中國兵器工業)그룹 회장, 왕창칭(王長靑) 중국항천과공(中國航天科工)그룹) 산하 제3연구원(미사일 연구개발 담당) 부원장의 전국정협위원 자격을 취소했다고 공개했다.
이들 3명은 모두 중국 거대 국유 군수업체의 핵심 인사다. 중국항천과기그룹과 중국항천과공그룹은 중국의 미사일·로켓 개발을 맡고 있는 중추 업체다. 홍콩 명보(明報)는 “이들이 로켓군 부패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고 리상푸(李尙福) 전 국방부장(장관)과 연관됐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 군부에서는 지난해 여름 이후 리상푸 전 부장·리위차오 로켓군 사령관 등 인민해방군 지도부 인사가 줄줄이 낙마하면서 피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피바람의 ‘진앙’으로 꼽히는 곳이 로켓군이다. 로켓군은 육군·해군·공군·전략지원군과 함께 중국 5대군 가운데 하나다. 2015년 12월 31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전폭적 지원으로 창설된 핵전력 운용부대다.
로켓군의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2022년 10월 미 공군대학 산하 중국항공우주연구소(CASI)가 발간한 225쪽 분량의 ‘중국 로켓군보고서’에서 비롯됐다. 보고서는 ▲로켓군의 조직 구성 ▲지휘관과 고위 관계자의 신원 ▲각급 부대의 위치와 좌표 ▲배치된 미사일의 종류 등의 군사기밀을 담고 있다. 야오청(姚誠) 전 해군 중령은 “이런 정보는 하급간부로부터 빼낼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군사기밀 유출정황이 로켓군 고위층에서 발생했음을 시사했다. 로켓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로켓군 비리사건은 지난해 7월4일 우궈화(吳國華) 전 부사령관이 사망하면서 태풍으로 변했다. 관영 중국 언론들은 우 부사령관이 뇌일혈로 사망했다는 부고를 냈지만, 그의 상사가 25일 소셜미디어(SNS)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글을 올려 피바람을 부른 것이다. 다음날인 26일부터 군사장비 조달을 총괄하는 장비발전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2017년 10월 이후 군사장비 불법구매 및 규율위반 등에 초점을 맞췄다.
28일에는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가 리위차오 로켓군 사령관과 류광빈(劉光彬) 부사령관, 장전중 중앙군사위 연합참보부 부참모장 등 3명을 연행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시 주석이 직접 상장 계급장을 달아준 리위차오와 쉬중보(徐忠波) 전 로켓군 정치위원은 31일 나란히 낙마했다.
이 와중에 리상푸 전 부장이 8월 말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8월 29일 열린 중앙아프리카평화안보포럼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3월 국무위원 겸 국방장관에 취임한 리 전 부장은 10월 국무위원과 국방부장, 국가군사위 위원직에서 해임돼 최단명 국방부장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그의 해임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리 전 부장이 로켓군 군납품 관련 부패에 연루됐다는 루머가 흘러나왔다. 그는 2017년 3월부터 국방부장에 임명된 지난해 3월까지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장을 지냈다.
12월 27일에는 전국정협이 우옌성과 류스취안, 왕창칭의 정협위원 자격을 취소하고 29일에는 전국인대가 해군사령관 둥쥔(董軍) 상장을 국방부장에 임명하고 장전중과 장위린, 라오원민, 쥐신춘, 딩라이항, 뤼훙, 리위차오, 리촨광, 저우야닝의 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요엘 우트나우 미 국방대 중국군사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로켓군 주요 인사들에 대한 해임은 시 주석이 인민해방군의 부패척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로켓군은 ‘핵반격 능력 보유·강화’를 목표로 창설된 만큼 인민해방군 현대화 프로젝트의 상징이자 대미(對美) 핵억제력 확보의 주요 군대로 여겨졌다. 그런데 창설된 지 불과 8년 만에 부패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국군이 치명적 타격을 입은 것이다. 천다오인(陳道銀) 전 상하이 정법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장군들이 제 주머니 챙기기에 바쁘면 어떻게 전투 의지를 갖겠느냐”며 “이번 스캔들은 시 주석의 자신감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이이 100명이 넘는 군장성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다.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군사령관 수보다 많다. 명보는 내부가 곪아 조직이 붕괴되는 현상을 뜻하는 ‘산사태식 부패’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중국 군부의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중국군이 국가의 군대가 아닌 공산당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인민해방군의 통수권은 중국 국가주석이 아닌 당중앙군사위 주석에게 있다. 국가의 군대는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임무이지만 당의 군대는 정권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까닭에 정치적 충성심이 인사의 기준이 된다. 이런 만큼 유착과 부패도 생기기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지낸 뒤 부패혐의로 낙마한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집에서는 1t이 넘는 현금과 귀금속이 나왔다.
이와 함께 인민해방군이 서방의 군대조직과 비교해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원인의 하나다. 입법부나 언론 등 제3자의 조사와 감시를 받지않다 보니 중국 국방예산(지난해 기준 1조 5537억 위안·약 285조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중국군 운영과정에서 무기와 보급품 등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을 부풀려 비자금으로 유용되기 쉽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는 “정권 초기에는 정치적 동기에 따른 숙청이었을 수 있지만 리 전 부장과 로켓군 장성들의 무더기 해임은 다른 경우”라며 “그들은 시 주석 취임 이후 임명된 데다 자격도 충분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군이) 조직적으로 부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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