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방한한 뉴욕타임스(NYT) 아서 슐츠버거 회장은 “‘가짜뉴스’는 굉장히 음흉한(insidious) 표현”이라며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등 인류 역사의 끔찍한 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독재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제거하고 나라를 통제하는 데 쓰였다”고 했다. 이어 NYT는 지난 11월13일자 1면에 ‘서울이 검열 우려 속에 가짜뉴스를 정조준하다’는 기사를 냈다.
2023년 누구보다 ‘가짜뉴스’ 용어를 많이 사용한 인물 중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각종 공개석상에서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대통령 명예훼손을 이유로 많은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등은 한 몸처럼 가짜뉴스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미디어오늘이 지난 1년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공개발언 때 ‘가짜뉴스’ 언급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 등 공개 발언 자리에서 허위정보, 거짓정보 등을 경고한 것이 단순 보도만 종합해봐도 7회 이상이다. 특히 지난 4월에 발언이 집중됐다. 4월6일 신문의날 축사에서 “잘못된 허위정보와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국민의 의사결정을 왜곡함으로써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시스템까지 와해시킨다”고 운을 띄웠고 4월9일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거짓과 부패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헌법정신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대통령 “가짜뉴스 이런 것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 위협”]
4·19혁명 기념사에선 ‘가짜뉴스’를 대놓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4월19일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직후인 4월2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곧바로 ‘가짜뉴스 퇴치’ 대책을 발표했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엔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가 설치된다.
[관련 기사 : 법무부장관 “가짜뉴스, 끝까지 책임 묻는 선례 남겨야”]
대통령뿐 아니라 여권 핵심 인사들도 ‘가짜뉴스’ 경고를 쏟아냈다. 2월8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 “가짜뉴스, 끝까지 책임 묻는 선례 남겨야 한다”고 했고 4월11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첫 원내대책회의에서 ‘가짜뉴스 엄중대응’을 공식 예고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월3일 개천절 기념사에서 “가짜뉴스는 사회적 재앙”이라고 했다. 이동관, 김홍일 등 방통위원장에 오른 인물들이 취임사 등 ‘가짜뉴스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비판 보도한 기자들 고발 후 연이은 압수수색
적극적인 가짜뉴스 대응 기조는 공권력 행사로 구체화됐다. 대통령실은 2월3일 역술인 ‘천공’의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을 보도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를 상대로 형사 고발에 나섰다. 천공의 관저 이전 개입설은 2022년 12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제기했는데, 당시에도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외에도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관련 고발이 이뤄졌고 특히 9월7일 국민의힘이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관련 뉴스타파와 MBC 기자 6명 고발이 큰 파장을 불렀다.
[관련 기사 : 압수수색 또 압수수색…기자 터는 게 일상인 나라]
미국 등에선 금기시되는 언론인 압수수색도 빈번하다. 검찰은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고위로 허위 인터뷰 및 명예훼손 기사를 썼다며 기자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9월14일 뉴스타파와 전직 JTBC 기자(현 뉴스타파 기자)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10월26일엔 경향신문 전현직 기자와 뉴스버스 기자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12월엔 칼끝이 언론사 대표를 향했다. 검찰은 12월6일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압수수색에 이어 12월26일 ‘뉴스버스’ 이진동 대표를 압수수색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해 11월 “반복되는 검찰의 언론인과 언론사 압수수색은 언론자유를 보장해 온 사법적 판단을 깡그리 무시한 채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와 국민적 심판에 직면한 정권의 안위를 고려한 정치적 수사”라고 비판했다.
‘가짜뉴스특위?’ 새롭게 등장한 가짜뉴스 대응 위원회들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팬덤특위’는 지속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2월13일 팬덤특위는 세미나를 열고 ‘청담동 술자리 의혹’ 등을 언급하며 ‘팬덤’에 의한 가짜뉴스 공세를 폈다. 4월7일엔 유튜브 언론중재 대상 추가와 ‘원스톱 대응 포털’ 등의 가짜뉴스 피해구제책을 내놨다. 팬덤특위는 이날에도 정의가 불분명한 ‘가짜뉴스’ 용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짜뉴스 사례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을 꼽아 목표가 ‘정쟁’에 있다는 비판을 불렀다.
[관련 기사 : 대통령 직속 팬덤특위 “유튜버도 언론중재 대상”]
김장겸 전 MBC 사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회’도 8월7일 출범했다. 해당 특위는 첫 일정으로 ‘가짜뉴스 괴담, 무엇을 노리나’ 세미나를 개최했다. 특위가 ‘가짜뉴스’로 규정한 10월3일자 MBC ‘뉴스데스크’와 9월22일자 KBS ‘주진우라이브’는 현재 방통심의위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심의 절차에 올라있다.
문체부·방통위·방심위… 가짜뉴스 대응 ‘한 몸’ 된 당국
규제 당국은 가짜뉴스 대응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4월20일 ‘가짜뉴스 퇴치’ 대책을 발표한 문체부는 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 센터를 설치했다. 그간 언론재단은 가짜뉴스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고 밝혀왔던 곳이다. 언론재단은 2019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모호성을 줄이고 허위정보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와 실수로 인해 발생한 잘못된 정보를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문체부의 ‘가짜뉴스 퇴치’ 대책 톺아보니]
언론재단은 이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자유언론국민연합이 주최 ‘가짜뉴스 시상식’에 3000만 원을 지원하게 된다.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은 축사에서 “가짜·거짓 뉴스의 전염력과 전파력은 의학적인 전염병보다 속도가 빠르며, 그 변종과 재가공 형태에서는 교묘하고 집요함이 드러난다”며 “문체부는 국민의 우려와 염원, 전문가의 정책적 상상력과 비전을 적극 반영하여 가짜뉴스 퇴치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동관’으로 대표된 방통위는 전면적인 ‘가짜뉴스 전쟁’을 펼쳤다. 후보에 지명될 때부터 ‘가짜뉴스’를 언급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은 언론사 폐간까지 운운하며 9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의 ‘가짜뉴스 근절TF’를 발표했다. 방통심의위와 함께 가짜뉴스 ‘심의 패스트트랙’을 구축했고 여권이 ‘가짜뉴스 온상지’라 비판한 네이버 뉴스 서비스의 사실조사 및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네이버는 9월 여권이 ‘좌편향’이라 공격한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중단했고 SNU팩트체크센터장은 네이버가 정치권 외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관련 기사 : 정부, 포털에 가짜뉴스 심의 중인 보도 ‘삭제’까지 요구한다]
방통위가 전면에 나서는 동안 방통심의위는 가짜뉴스 대응을 실행한 ‘행동대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이후 야권 위원들이 해촉되며 여권 다수로 바뀐 방통심의위는 대통령실이 ‘정치공작’이라 규정한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에 대해 적극적으로 심의했다. 잇따른 내부 반발에도 9월26일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이후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를 개소해 운영했고 센터를 통해 사상 첫 인터넷언론(뉴스타파) 심의에 나섰다. 이후 방통심의위는 11월13일 해당 녹취록을 인용보도한 MBC, KBS, YTN, JTBC에 총 1억 4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관련 기사 : ‘뉴스타파 인용’ 방송사에 1억4천만 원 과징금 “당황스러워 말 잇지 못할 정도”]
지난해 10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칭하기 시작했고 많은 정치가들이 권력을 비판하는 보도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였다”며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칭하는 건 언론에 낙인을 찍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했다.
김민정 교수는 “언론을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매도하게 되면 실제 근절할 필요가 있는 온라인상의 허위정보 근절이 더욱 어려워진다”며 “코로나19 건강위협 정보 등 허위정보 대응을 논의할 때 언론의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언론을 가짜뉴스 온상처럼 여기면 언론 신뢰가 떨어지고, 언론과 정부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