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민 사이 두터운 콘크리트 벽을 깨야 한다”고 밝힌 윤석열 대통령, 정부와 언론 사이 벽은 깰 생각을 않고 있다. 대통령과 언론의 공식 기자회견은 2022년 8월이 마지막이었다. 올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개최한 것을 두고 ‘신년 기자회견을 건너뛰기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를 두고 “언론·야당 빠진 대통령의 소통에 변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부처 업무보고회를 경기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었다. 보고회 이름은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다. 시민 70여 명이 참여했다. 조선일보 5일 4면 <용인서 신년보고 받은 尹, 전국 돌며 민생토론회 연다>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에 핵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만한 아주 두툼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하는데 깨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주제를 달리해 10회 정도의 민생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이 새해 들어 전국 순행에 나선 것을 두고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란 해석도 나온다”며 “야당은 올 총선을 겨냥해 정권 심판론을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의 국정 성과와 새해 비전을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략지를 돌며 국정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뜻도 담겼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계획을 공표하지 않은 것은 비판 지점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조선일보와 신년 인터뷰를 진행할 뿐 별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사설 <언론·야당 빠진 대통령의 소통에 변화 필요하다>에서 “민생을 앞세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대통령실 설명에는 기시감이 적지 않다”며 지난해 타운홀 미팅에서 제기된 논란을 거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민·현장·당정과의 소통을 주문했고, 이후 타운홀 미팅 형식의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당시 한 참가자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 참가자가 국민의힘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일보는 “대통령실이 사전 선별한 참여자와 주제로 진행된 새해 업무보고가 또 다른 정책 홍보 행사로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정작 국민을 대변해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야당과 언론은 소통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라며 “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기약이 없다. 공식 기자회견은 취임 100일 때인 2022년 8월이 마지막이었고 전임 대통령들이 통상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도 작년에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신년 기자회견을 건너뛰기 위해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년 기자회견이나 정례 기자회견 재개를 통해 대통령의 소통 방식과 의지가 변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도 사설 <尹, ‘민생토론회’ 어제 시작… 신년 기자회견은 언제 하나>를 내고 “참모들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자고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은 별다른 지침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민생토론회로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중반대에 머물 정도로 민심이 여권에 등 돌린 결정적 이유는 소통 부족”이라며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열린 소통’을 강조하고, 구중궁궐에서 나오겠다며 집무실 이전까지 강행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신년 회견까지 하지 않으면 소통의 기회는 아예 없어진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1월 중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윤 대통령은 껄끄럽고 내키지 않더라도 찬성 여론이 높은 김건희 특검법을 백지화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게 옳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나라는 정상적인 민주국가가 아니다. 신년 회견은 독선과 독주로 비친 국정운영방식의 변화를 직접 천명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증오정치 단면 드러난 이재명 피습 사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을 통해 한국 ‘증오 정치’의 단면이 드러났다. 야당 대표 피습에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모론도 제기됐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 대표가 있는 병원에서 방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국일보는 1면 <증오정치가 낳은 ‘시한폭탄들’ 우리 곁에 있다>에서 “정치가 대화와 타협보다 유권자를 자극하는 데 치중하고, 강성 지지층을 동원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며 적개심을 부추기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우리 이웃이 또 다른 가해자로 돌변할지 모른다”며 “이번 테러를 놓고 ‘증오 정치’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한국일보는 2면 <현실이 된 SNS 언어폭력·문자폭탄… 칼날로 돌아온 ‘팬덤 정치’>를 내고 “전문가들은 팬덤 정치의 폐해를 방치한 정치권에 1차적 책임을 묻는다”며 “정치권의 비상한 각성이 뒤따르지 않으면, 총선이라는 큰 이벤트까지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을 타깃으로 한 테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6면 <서울대병원 점령한 유튜버들, 곳곳 휘저으며 생중계>에서 극단적 정치성향을 가진 유튜버들이 서울대병원에 찾아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원준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칼럼 <사이버 레커>에서 자극적 사건이 불거지면 가장 먼저 등장해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세력이 있다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에 또 이들이 달려들었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있다. 돈맛을 본 터라 쉬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치명적 부작용이 결국 이런 괴물을 키웠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증오를 조장하고 막말 논란을 일으킨 정치권을 이번 총선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증오 조장-막말 정치인 與野 공천서 배제하라>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흉기 피습 이후 정치권에 구체적인 자성(自省)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팬덤 정치에 기댄 오염된 정치 언동이 흉기 테러의 뿌리였음을 인정하고,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언어를 바꾸는 노력에 여야가 시동을 걸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제 정치인들은 ‘막말하면 진짜 손해’라는 걸 체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한동훈, 이재명 등 두 정당 책임자가 직접 주도해야 한다”며 “여야는 곪을 대로 곪은 당내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정치 개혁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추상적 혁신을 늘어놓는 것보다 막말에 대한 공천 배제 원칙이야말로 손에 잡히는 혁신”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역시 사설 <이 대표 병원까지 찾아가 난리 치는 정치 유튜버들>에서 “정치 유튜버의 문제는 여야가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자기편 유튜버들의 불만을 사지 않으려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며 “이 대표를 공격한 사람도 평소 정치 유튜브를 즐겨 보며 정치 과몰입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배드파더스 유죄 받았지만… 양육비 문제는?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 ‘배더파더스’ 운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사적 제재’ 논란과는 별개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향신문은 사설 <‘배드파더스’ 유죄 판결, 정부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화해야>에서 “이번 판결은 성범죄 등 위법행위자에게 수치를 주는 신상공개 제도화와 법적 다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사적 제재’ 논란에도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 부모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대부분은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로 간주한다. 우리 정부도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며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이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해결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건 이 제도 도입과 안착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신문 박현갑 논설위원은 칼럼 <사적(私的) 제재>를 내고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가 제 기능을 못 할 때 생긴다. 특히 사회적 공분을 사는 사건이 터졌는데도 법적 응징이 미흡하면 사적 제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며 “금전적 이익을 노린 마케팅 차원의 공개라는 지적도 있으나 ‘지연된 정의’로 인한 사법 불신 풍조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죄를 지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고, 범죄 피해자는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사법 신뢰가 바로 설 때만이 사적 제재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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