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지난해 미국서 역대 최다 판매 기록
“IRA 폐기” 내건 트럼프, 바이든과 지지율 격차 벌려
올 하반기면 美 보조금 받는데… 현대차 ‘촉각’
현대자동차가 1990년대 초 품질 문제로 갖은 굴욕을 겪었던 미국 시장에서 30여년이 지나 ‘최대 호황기’를 맞이했다.지난해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미국 전통 자동차 업체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다만, 역대급 성과에 자축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다.올 하반기 현대차의 미국 전기차 공장 가동이 예정된 가운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 대비 12.1% 늘어난 165만2821대를 판매해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현대차는 11.5% 증가한 87만370대를, 기아는 12.8% 상승한 78만2451대를 각각 미국 시장에서 판매했으며,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전년 대비 22.6% 늘어난 6만9175대가 판매됐다.
이는 기존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던 2021년(148만9118대)보다 16만대 이상 웃도는 수치다. 1986년 소형차 엑셀로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지 37년 만의 성과다.
이에따라 미국은 한국(121만8762대)를 29만 1817대 차이로 제치고 3년 연속 현대차·기아의 최다 판매국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미국 시장에서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판매 4위 업체로 오를 가능성도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아직까지 포드와 스텔란티스의 판매실적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대차가 4위에 오를 경우 사상 최초다. 현대차·기아는 2021년 혼다를 추월하며 처음으로 시장 5위에 올랐으며, 2022년까지 5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중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미국에서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현대차의 브랜드 경쟁력 역시 한 단계 높아지게 됐다. 특히 IRA로 전기차 보조금이 가로막힌 상태에서도 상품성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대변한다. 현대차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라며 “전기차 보조금 미적용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음에도 미국 어워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면서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고, 브랜드 경쟁력을 높인 데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는 물론 미국 시장에도 역대급 실적을 기대할 수 있게 됐지만, 국내 시장과 달리 미국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지난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맞닥뜨렸듯, 올 연말엔 미국 대선이 예정돼있어서다.
미국의 대선이 특히 중요한 것은 현재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전개하는 전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 등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맞닥뜨린 바이든 정부의 IRA로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 없이 전기차를 판매해야하는 상황에 놓였었다. IRA에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을 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 7조 2000억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전반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IRA를 폐지하고, 모든 수입제품에 10% 관세를 추가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바 있다.
IRA를 폐지하기 위해선 미 의회를 통과해야하는 만큼 폐지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해당 법안 내용을 대거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석유자원에 대한 강조를 이어왔다. 전기차 보조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단 의미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IRA를 폐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개정을 통해 보조금 수령의 문턱을 더 까다롭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보조금을 줄인다던지,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을 더 붙일 것”이라며 “FEOC(외국 우려기업), 특히 중국산 배터리나 광물에 대한 기준을 강화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트럼프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하루빨리 ‘플랜B’를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2년 IRA 대응이 늦어 타격이 컸던만큼, 배터리 원자재 다변화와 로비 라인을 강화해 대비 태세를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국제정세 대응방안 등을 대비하기 위해 성 김 전 주인도네시아 미국 대사를 자문역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재야에 굵직한 인물들과 연결고리를 만들며 발빠르게 플랜 B를 구상해야한다”며 “가장 취햑한 부분인 배터리 원자재 부분에서 해외 다변화를 추진하는 등 비상 대책도 필요해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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