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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사망 책임 꾸짖는 언론…동료기자들과 비겁하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조회수  

“매번 반복된다. 이번이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닐 것이다.” 배우 이선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뒤 그간 이씨를 소재로 한 보도 흐름을 지켜본 한 기자가 말했다. 피의사실 공표부터 일방적 인격살인, 사생활 침해 폭로에 이르기까지 언론이 쏟아낸 보도 양상에 대한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이씨 사망 이후 언론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보도를 일제히 내고 있다. 포털 뉴스검색 결과를 보면 이씨 사망과 관련해 ‘무리한 수사’를 키워드로 한 보도가 3일 현재 412건에 이른다.

관련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사망 이후 언론이 또다시 ‘화살 돌리기’에 나섰다고 지적한다. 이씨 생전 언론은 수사기관의 정보 흘리기에 호응하고, 공영방송·유튜버·연예매체를 가리지 않고 사생활 침해에 나섰다. ‘문제를 알면서도 반복하는 원인’은 수익으로 모인다.

▲경기신문
▲경기신문 10월19일 보도

1차 문제는 경찰이 이씨 상대로 수사 개시를 결정하기도 전에 보도가 나왔다는 점이다. 경기신문이 10월19일 “인천시경 관계자”를 익명 인용해 ‘L씨 마약 관련 혐의로 내사를 받는다’는 첫 보도를 냈다. 보도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어 언론을 통해 이씨가 특정됐다.

기자들은 다른 사안과 비교해도 첫 보도 시기와 내용이 문제라고 말한다. 사건 취재 일선에 있던 일간지 A 기자는 “(첫 보도는) 기본 포맷(형식)을 갖추지 않은, 불성실하게 작성된 기사라고 느꼈다”며 “보도 대상이 유명인인지와 무관하게 기사엔 그가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혐의)와 때와 장소, 법이 정의하는 죄목 등을 포함해야 하는데 이런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기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사 단계에서 (독자적 확인 취재 없이) 보도한 점이 문제”라고 했다. A 기자나 그가 속한 일간지는 이씨 수사 관련 보도의 공익성이 낮다고 판단해 취재 지시나 인원 배치가 적었다.

수사기관이 첫 원인 제공자로 꼽힌다. 6년여 간 확인하지 못한 단계에서 기사화한 점도 문제”라고 했다. 경찰팀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는 B 기자는 “과거 경찰청에서 기자들이 내사 단계인 사건에 대해 물었을 때 경찰청 관계자들이 ‘입건 전 조사 중이라 곤란하다’며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사안에서는 경찰의 태도가 너무 달랐다”고 했다. B 기자는 “정부가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마약 관련 수사에서 이런 행태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첫 보도한 언론이 공인도 아닌 배우를 상대로 한 주장에 경찰조차

▲서울중앙지검 앞 취재진이 설치한 포토라인.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취재진이 설치한 포토라인.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혐의와 무관한 사생활 폭로까지 뒤섞였다. 이번 사건은 공영방송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보도에 가세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KBS는 지난달 24일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며 둘 사이 관계를 추정하는 보도를 냈다. 같은 달 초 이씨의 간이 검사와 정밀 검사 결과 마약류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사실이 보도됐던 터다. 극우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의 사생활 침해성 폭로 내용을 각종 언론사가 받아쓰기도 했다.

종합 매체에서 문화·연예 부문을 주로 취재한 전직 기자 C씨는 “연예인과 마약류를 소재로 한 인권 침해 보도는 반복돼 왔지만 이번 사건이 두드러지는 건 KBS까지 동조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대중이 연예매체에 갖는 신뢰는 매우 낮고, 연예뉴스는 일종의 ‘유희’ 수단으로 여겨진다”며 “반면 공영방송이 자사 정규 뉴스시간을 할애해 사인 간 관계를 추정하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매체 파워로 정보에 공신력을 더하는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망신주기 수사에 몰아가기 보도…
이씨 측이 검·경에만 알린 내용, 곧바로 언론에

수사기관이 확보한 정보를 포함한 인격살인식 보도가 쏟아졌다. 일례로 ‘성실하게 조사받겠다고 밝힌 이씨가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는 듯한 보도다. 언론은 이씨의 1차 조사 당일(10월28일) 그가 ‘조사에 출석해 진술을 거부했다’는 주장을 내보냈다. 아래는 이들 보도 제목의 일부다.

죄송하다며 입은 닫은 이선균(채널A)
경찰 “‘진술 거부’ 이선균, 조만간 재소환”(스포TV뉴스)
성실히 조사 받겠다던 이선균 진술 거부(기호일보)
죄송은 한데 입은 꾹 닫은 이선균(머니S)
초췌해진 이선균, 마약 혐의 진술 거부…실망의 연속(스타이슈)
“성실하게” 외치던 이선균, ‘마약 혐의’ 진술 거부한 채 1시간 만에 귀가(스포츠투데이)

이씨와 변호인 측은 보도 뒤 ‘본래 시약 검사를 받기 위해 잡은 일정이었는데 경찰이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진술 거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포털 뉴스검색에 따르면 이씨 ‘진술 거부’ 언급을 포함한 기사만 1차 조사 당시부터 11월 7일까지 530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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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균씨의 1차 경찰 조사 당일 나온 보도 일부. 포털 뉴스 검색 결과 갈무리.

이씨가 검찰에 낸 고소장 내용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씨 측이 ‘유흥업소 실장으로부터 3억 5000만원을 갈취 당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고소장을 제출한 직후 언론은 ‘3억5천 뜯겨’ 등을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당시 이씨 측 변호인은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가 나왔다고 밝혔다.

사망 뒤 화살 돌린 언론, 보도 행태 그대로

언론은 이씨 사망 뒤 반대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경찰의 망신주기와 몰아가기 수사를 비판하는 기사들이다. 이씨의 유서와 장례식 현장 등 이씨 유족과 소속사가 공개 거부 뜻을 밝힌 내용은 여과없이 전파를 탔다.

일례로 이씨 수사 과정에서 그의 가족이나 동료 연예인 신변 등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던 톱스타뉴스는 이씨 유서를 직접인용하는 보도, 유서 공개에 대한 비난이 쇄도한다는 보도, 경찰의 몰아가기식 수사에 대한 비판 보도를 냈다. TV조선이 이씨 유서를 보도한 뒤 또다른 조선일보 계열사인 조선닷컴과 OSEN은 유서를 직접인용하는 한편 “유족이 공개를 거부하였기에 해당 내용이 어떤 루트로 공개되었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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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은 이선균씨 유족 요청에 반해 이씨 유서를 공개했다. TV조선 보도화면
▲조선일보 온라인 홈페이지에 전재된 OSEN 기사
▲조선일보 온라인 홈페이지에 전재된 OSEN 기사는 TV조선 유서 내용을 인용하는 한편  “유족이 공개를 거부하였기에 해당 내용이 어떤 루트로 공개되었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썼다.

A 기자는 “이선균씨를 상대로 한 주장, 이씨의 주장, 또 이를 얼마나 확인 취재했는지 살펴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사가 쏟아졌다. 사법절차인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전모를 밝혀야 하는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언론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 없이 이씨가 사망한 뒤 꾸짖기만 하는 모습이다. 이런 보도에 답답함을 느껴 동료기자들과 ‘비겁하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잣대라면 언론 자신도 비판해야 맞다”고 했다.

6년차 경제매체 기자 D씨는 “이씨가 만약 숨지지 않았다면 언론이 얼마나 지적했을까”라고 되물었다. “내가 몸담던 매체도 편집국장이 그날 이슈가 되는 특정 키워드로 기사를 더 쓰라고 말하는 구조였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서가 가십 소재의 기사를 썼다. 고유정 사건부터 남현희 선수까지, 유명인이나 사건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같은 흐름이다. 모두가 문제임을 알지만 계속한다.”

“PV 무서워…조직 내 보도윤리 지적 헛소리 취급”
“마약과 전쟁” 호응해 ‘범죄 낙인’ 접근부터 문제

언론사도 아는 잘못을 반복하는 이유로 기자들은 ‘수익’을 가리킨다. C씨는 “연예매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포털”이라고 했다. 그는“포털 알고리즘에 따라 매체들의 기사 제목과 방향이 달라진다. 하트나 화살표처럼 특수문자를 쓴 기사 제목도 포털이 뉴스페이지 상단에 배치하는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 10월부터 이씨가 사망한 현재까지 이선균씨와 관련해 화살표(→)나 배우자임을 가리키는 하트(♥) 등 특수문자를 제목에 포함한 선정적 공방 보도가 쏟아졌다. D씨도 “결국 원인은 PV로 모인다”며 “‘일부 언론’이라고들 표현하지만, 온라인 연예 매체들이 쏟아내는 기사들의 영향이 너무나 크다”고 했다.

C씨는 “인터넷 연예매체의 기자들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자 교육을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예매체들은 일선 기자가 윤리 문제를 생각하도록 두지 않는다”고 했다. “종합지의 경우 문제 제기라도 할 수 있지만, 연예매체는 기자가 보도 윤리 문제를 지적하면 조직 내에서 ‘헛소리’ 취급 받는 곳”이라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 관련 이슈의 경우 피해 당사자가 문제제기할 가능성이 더 낮다. 

▲한겨레21 보도 갈무리
▲한겨레21 보도 갈무리

언론의 사실보도 의무를 논하기 앞서 마약류를 엄벌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정부 관점을 답습하는 보도에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21은 이선균씨가 사망하기 한달여 전인 11월 초 <연예인 마약 혐의, ‘범죄자’ 좌표 대신 ‘치료·보호’ 먼저> 기사를 냈다.

한겨레21은 “이선균씨가 마약을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라는 점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마약에 경계심을 주기보다는 치료받을 사람들이 숨어들게 하고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며 “마약류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을 편견과 낙인, 비난과 차별의 대상으로만 삼아 이 사람들이 ‘치료 장면’으로 나오는 걸 포기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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