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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일본과 같은 ‘입헌군주제’ 꿈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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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문 : 김씨 일가의 왕족화를 지향하는 체제 정비 지속

2023년 북한 정치의 중심은 ‘김주애’의 등장이다. 2022년 11월 18일 화성 17 시험발사 현장에 김주애가 처음 모습을 보였다. 당시 장거리 미사일과 관련된 행사에는 주로 김주애가 나타났기 때문에 대체로 북한이 미래 세대를 보장하는 상징을 연출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2023년 김주애의 등장은 군 행사에만 머물지 않고, 당 관련 행사에도 나왔다. <노동신문>은 리설주를 제외한 단독 앵글 사진을 내보냈다. 군 창건기념일 열병식 시작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손잡은 김주애가 사열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사랑하는’,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태는 단순히 김주애를 후계자로 지명할지의 문제를 넘어 북한의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추측케 한다. 정치체제의 지향점은 영국, 일본, 태국 등을 모델로 하는 ‘북한식 입헌군주제’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을 두고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백두혈통이고 왕(김정일)의 아들(김정은)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권력승계 당시 10여 년에 걸친 김성애와의 권력투쟁 과정을 거쳤고, 북한 주민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투쟁의 과정 없이 곧바로 당·정·군의 ‘당연한 추대(推戴)’ 형태로 권력을 승계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3대에 걸쳐 최고 권력자가 김씨 일가에서 나왔기 때문에 특별한 거부감 없이 과거 조선시대 ‘임금님’처럼 여긴다.

그러나 정치체제 문제는 다르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정치체제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북한 권력층은 왕조를 유지하며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지속해 나가는데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는 듯한 움직임이 2023년에 구체화되는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군주와 당·정·군의 분리 작업이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당·정·군의 리더들이 직접 현지 지도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노동당의 핵심인 조직비서 및 부장에 조용원을 앉힌 것도 군주와 당의 분리 차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 창건일에 북한군은 “김정은 위원장과 일가족이 군을 방문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인사를 했다. 김여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의해 대남 및 대외 문제에 책임지고 있다는 식의 발언과 성명을 내놓았다. 이렇듯 시간을 두고 당·정·군 자체의 일들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구조로 전환해 가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양한 법들을 도입했다. 법 자체는 필요한 것들이겠지만, 의도적으로 지향점을 갖고 법체계를 갖춰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진행된 지방대의원 선거도 주목된다. 100명의 후보 선거단이 2명의 후보를 놓고 선거했다.

예전에는 당에서 추천한 후보 1명을 놓고 주민들이 찬반투표를 했다. 이번에 실시한 방식은 제한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북한 최초의 경합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방식이 점차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방식으로 확대될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헌법 개정 당시 북한경제의 운영원칙을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바꾸었고, 2023년에는 농장관리법을 개정하여 ‘농장기업체’를 ‘농장기업소’로 바꾸면서 농장도 역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범주로 넣었다.

김주애의 지속적인 등장은 이러한 2023년 북한 정치 변화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김주애의 등장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변동성을 정치체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하며, 2023년은 이러한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한 해였다고 평가된다.

▲ 19일 <조선중앙통신>은 화성-18형 발사 훈련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훈련에는 김정은(왼쪽) 국무위원장과 김 위원장의 딸인 김주애(이름 추정, 가운데)가 참관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경제부문 : 시장기능의 재확인

북한은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채택하며 그 중심에 ‘자력갱생’을 두었다. 이를 두고 ‘과거 계획경제로의 회귀’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더욱이 식량판매소 강화, 중앙은행의 외화환전 및 사설 환전상 단속 등은 북한이 계획경제로 회귀하려는 의도로 평가하게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거 계획경제로의 회귀’보다는 ‘시장 기능의 정상화’쪽에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계획경제로의 회귀를 의도했다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경제운영방식의 기본으로 하고 있는 헌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농장관리법을 개정하여 농장들도 기업소의 범주에 넣으며 이른바 ’30(국가계획분):70(자체 처분)’을 농업부문까지 확장했다.

식량판매소는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지 않아서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상 외면당하고 있지만, 곡물 가격이 상승할 경우 낮은 가격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하는 것으로 봐서, 시장 곡물 가격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외화 환전과 시장에서의 외환 유통 금지 등의 조치는 통화량 관리를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물론 북한이 외환부족으로 시장의 외화를 모으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전체 그림 속에서 본다면 통화관리(정책)를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이 외환유통의 통제와 북한 원화 가치 유지라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한다.

‘자력갱생’을 강조함에 따라 북한 조직에서는 과거로의 회귀 성향을 보이지만, 시장 자체를 억제하는 조치들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 침체는 대북 경제제재와 국경봉쇄 등의 영향으로 시장에 물자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북한무역은 국경봉쇄로 인해 중국과의 무역이 줄어들고, 국경이 개방된 이후에도 아직 신속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물자의 30% 가까이는 외부 물자였지만,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시장 침체는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물자 30%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비 및 원자재 공급 등에도 영향이 미치면서 공장 가동률도 현저히 떨어지고 시장 공급 물자도 줄어들었다.

현재 북한의 자력갱생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부 동원 가능 자원을 최대한 끌어 모으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2010년대 이후 내부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외부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장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에 북한은 대외관계, 중국 및 러시아와의 무역거래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국경개방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신속히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한은 불만이 클 것이다. 경제 관점에서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거래는 정치군사적 목적 이외에 외부자원을 북한 내부에 공급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

2023년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년 이상의 국경봉쇄로 인해 내부 동원 자원이 고갈됐을 것이고, 국경개방 이후 기대했던 것만큼 무역이 회복되지 못하다 보니 경제침체의 골은 깊어지고 그에 따른 일자리도 현저히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시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북한 시장은 북한 경제의 중추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2023년은 이를 확인하는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대외부문 : 중-러 사이에서 줄다리기

북한은 미-중 대결의 심화 속에 반미 진영의 결속에 집중해 왔다. 경제요인으로 인해 해외공관을 줄여가고 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동남아의 사회주의국가들(베트남, 라오스)과는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국경봉쇄 해제 및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 재개 등도 북방 협력의 일환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른바 남방협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일 것이다.

그런데 2023년의 특징은 이러한 북방협력 가운데 가장 핵심인 중국과의 협력이 기대 이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중국은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북한은 국경개방 시기를 앞당기려 했다. 연초 개방할 것이므로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갔지만 몇 차례에 걸쳐 개방 시기를 연기했다. 그 이유는 중국 측에서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시장상인들은 국경만 열리면 중국과 무역이 재개되고 시장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국경은 열렸지만 중국과의 무역은 기대 이하로 저조했다. 그 요인은 대부분 중국 측이 예전과 달리 북한과의 무역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무역은 거의 후불(後拂) 조건이었다. 중국 기업들은 북한과의 무역을 이어가기 위해 후불조건을 수용해왔다. 그런데 국경개방 이후 중국기업들은 후불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역대금을 바로 지불하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자연히 북-중 무역은 활기를 띠지 못했다.

북한 근로자들의 해외취업은 경제제재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에서 유학비자 등의 형태로 북한 근로자 수천 명을 다시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거래 등으로 북-러 관계가 좋은 상태에서 진행된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새로운 근로자를 받지 않고 있다. 북한 근로자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북한의 주요 행사에 파견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예전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북한 역시 중국에 대한 예우가 예전 같지 않다. 당 창건일 행사에서 갑자기 방문을 결정했던 러시아 대표단을 부각시키는 반면 중국 대표단을 마치 들러리와 같이 대우했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북한-중국 관계가 안 좋은 이유는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북한 지원이라는 일 때문에 미국과의 대결에서 대만문제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점) 북한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고,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에 불만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러시아를 차선책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23년 북한의 대외관계는 중-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지속했다. 표면적으로 북한이 러시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과거 냉전시대처럼 양국의 긴장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계륵'(鷄肋)이다. 버릴 수는 없고, 취하려고 하니 이로울 것도 없는 대상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써 유용할 뿐 아니라 극동지역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북한이 필요한 존재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데 중국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다.

▲ 7월 28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7일 저녁 평양에서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김정은(가운데) 국무위원장이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국방장관과 주석단에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며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24년 전망

2024년에도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2023년의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김씨 일가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는 정비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공식경제 부문으로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보강에 주력할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을 통제하는 표면적 현상들 역시 지속될 듯하다.

대외관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비중을 높이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은의 중국 방문도 가능해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여부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2024년에는 한국의 총선, 미국의 대선이 있고, 일본의 정치변동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북한의 태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한·미에 대해 공세적 군사행동에 나설 개연성은 적어 보인다. 물론 내치 등 특별한 수요가 있다면 북한의 행동은 언제든지 거칠게 나올 수 있는 만큼, 우리로서는 이러한 유동성에 빈틈없이 대비하면서 한반도 정세 변화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얼마나 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가 가장 큰 변수다. 한국은 북한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필요성이 큰 만큼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가장 적극성을 보이기 마련이다.

반면 중국, 러시아는 물론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변화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극성을 발휘할 필요가 약하다. 한국이 북한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2024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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