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2017년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는 스토리보다 독특한 형식으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이다.
죽음을 앞둔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 특유의 화풍을 활용해 그린 한 컷 한 컷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 자체가 그의 작품 같다는 극찬을 보냈다.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먼 감독은 다시 한번 손잡고 새 유화 애니메이션 ‘립세의 사계’를 내놨다.
이번에는 고흐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화가 30인의 명작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19세기 말∼20세기 초 그림을 패러디한 장면이 중간중간 나와 반가움을 안긴다.
전작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유화로 구성된 이 영화는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촬영한 뒤 여기에 그림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100명 이상의 페인팅 아티스트들이 투입됐고 완성하기까지 총 25만시간이 소요됐다.
스토리는 19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의 ‘농민’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립세’에 사는 소녀 ‘야그라’다. 립세 최고 미인인 그에게는 늘 젊은 남자들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야그라의 어머니는 “사랑은 없어지지만, 땅은 남는다”며 손주를 줄줄이 본 홀아비 부농 ‘보리나’에게 딸을 시집보낸다.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야그라는 결혼 전부터 보리나의 아들 ‘안테크’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야그라의 삶은 당연히 불행의 연속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걸쳐도 좀처럼 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졸지에 연적이 되어 버린 보리나와 안테크 부자는 갈등을 거듭하다 서로 주먹질까지 한다. 이 결혼으로 행복해진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다.
특히 사건의 중심에 선 야그라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다.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 그녀를 ‘창녀’라 몰아붙이며 마녀사냥한다.
100년 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탓인지 이야기는 21세기 관객들의 공감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그라를 탐내는 마을 남자들은 그를 순식간에 헤픈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여자들은 욕정에 눈이 먼 남편을 탓하는 대신 야그라를 손가락질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강간·폭행 장면이 많아지면서 눈이 질끈 감긴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야그라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욕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 영화로 두 감독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종잡기 힘들다.
영상미만큼은 경탄을 자아낸다. 제목처럼 립세의 네 계절을 담은 풍경과 철이 바뀌는 순간의 묘사는 명화 속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인물 표현 방식이 실사영화에 가까워 ‘러빙 빈센트’만큼 신비하고 몽환적인 느낌은 덜하다.
폴란드 전통 음악과 노래, 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야그라가 마을 남자들과 번갈아 가며 쌍으로 춤을 추는 역동적인 장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10일 개봉.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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