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원겸 기자]상무이사로 승진한 박동훈은 동네친구들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잡는다. 그리고 별다른 기교없이 목청껏 노래한다. 친구들의 박수와 환호가 멋쩍은 듯, 이따금씩 얼굴에 번지는 박동훈의 옅은 미소는 쓸쓸하기만 하다.
그 시각, 박동훈을 위해 동네를 떠난 이지안은 좁은 고시원으로 돌아와 허기를 달래려 믹스 커피를 뜯는다. 귀에는 여전히 박동훈을 도청하는 이어폰이 꽂혀있다. 이날 이지안은 박동훈에게 “아저씨는 4번 이상 나한테 잘해준 사람이다. 내가 좋아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자”고 작별 인사를 한 터 였다. 박동훈이 목청껏 부르는 그 노래에 담긴, 그 아저씨의 마음이 가닿은듯, 이지안은 조용히 눈물을 떨군다.
‘찬바람 비껴 불어 이르는 곳에/마음을 두고 온 것도 아니라오/먹구름 흐트러져 휘도는 곳에/미련을 두고 온 것도 아니라오 / 아, 어쩌다 생각이 나면 / 그리운 사람 있어 밤을 지새고 /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 허전한 이내 맘에 눈물 적시네’
2018년 5월 10일 방송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14회에서 이선균이 부른 그 노래는 ‘아득히 먼 곳’이다. 당시 방송 후 이 노래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아득히 먼 곳’은 가수 이승재가 1984년 발표한 노래로, 송골매 구창모가 작곡했다. 이 인연으로 이선균은 2023년 1월 21일 방송된 KBS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40년 만의 비행’에 게스트로 초대돼 이 노래를 불렀다. 현재 경기도 김포의 한 교회에서 목회자로 복음을 전하는 이승재는 지난 7월 한 지방 음악회에서 “‘아득히 먼 곳’은 기네스 기록을 가진 노래다. 딱 한 번 방송 출연하고, 그해 레코드 판매 1위를 했다”고 회상했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다. 박동훈을 연기한 이선균과 이지안을 연기한 이지은은 세상 모두의 ‘너와 나’였다. “너와 같은 사람이 여기 있다고, 삶이 다 그런 거라고 우리를 위로하는 드라마”라는 평가 속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꼽는다. 드라마 마지막 회 대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감정이입을 더욱 불렀다.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보다. 다 죽어가는 나 살려 놓은 게 너야.”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이제 진짜 행복하자.”
그 아저씨, 박동훈은 이제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났다. ‘나의 아저씨’를 보며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도, ‘아득히 먼 곳’을 감명 깊게 들은 사람들도 모두 박동훈을 그리워한다.
‘황금빛 저녁 노을 내리는 곳에 / 사랑이 머무는 것도 아니라오 / 호숫가 푸른 숲속 아늑한 곳에 / 내 님이 머무는 것도 아니라오 / 아, 어쩌다 생각이 나면 / 그리운 사람 있어 밤을 지새고 /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 허전한 이내 맘에 눈물 적시네’
점심시간,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박동훈과 이지안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 뒤돌아서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는 장면으로 ‘나의 아저씨’는 끝난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냐?”
“네. 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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