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매주 입장이 달라지니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지 난감합니다. 일단 올해는 ‘상생’으로 귀결되는 듯한데, 내년에도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죠.”
올 한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금융권 전반의 컨트롤타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정책 기조를 바꾸는 ‘갈 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이같은 당국의 움직임에 금융업권은 일 년 내내 혼란과 혼돈을 거듭해왔다.
취약 차주 지원을 위한 상생금융 강화, 금융권 내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를 다잡은 강도 높은 내부통제 감독, 이밖에 금융권 전반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책적 지원은 과거 그 어떤 정권의 금융당국보다 비교적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의 엇갈리는 정책적 행보와 발언에 금융권이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는 점은 분명한 만큼 금융업권에서는 내년 보다 명확한 기조와 정책적 일관성을 갖고 금융업권과의 지속적 소통을 해 줄 것을 당국에 주문하고 있다.
관치 논란 키운 금융당국
시작부터 어수선했다. 지난해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은 소위 ‘관치 인사’ 논란으로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소위 ‘셀프 연임’ 이슈를 띄운 금융당국은 이후 사실상 지주사 회장 선임 과정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같은 관치 흐름은 올해 초에도 지속됐는데, 특히 그동안 관치 기조에서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던 ‘금리 체계’에까지 손을 대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금융당국은 연 8%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던 대출금리가 또 한 번 국내 금융시장의 리스크로 떠오를 수 있다며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은행권의 가산금리 산정 기준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문제가 포착될 때 금리산정 체계에 사실상 개입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며 은행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리 상승기에 은행이 시장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 실태를 지속적으로 점검·모니터링해 미흡한 부분은 개선토록 하는 등 금리산정 체계의 합리성·투명성 제고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당시 이같은 금융당국의 압박은 결론적으로 은행권 내 금리체계가 엉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 강화 기조에 대출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금융당국의 개입이 지속되면서 금리가 하락하는 ‘금리 역행’ 현상이 불거진 것이다.
그 결과,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 가산금리 하락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연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금리 정책에 대한 금융당국의 일관성이 결여된 부분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메커니즘을 무시한 금리 인상 및 인하 압박이 지속되면서 은행권 또한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 지난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이밖에 △공매도 시행 △충당금 적립 등 주요 이슈에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지속하며 금융권의 혼란을 부추겼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예·적금의 수신 금리 인상을 압박하던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오름세 억제를 이유로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수신금리 인상 자제를 주문하는 촌극도 기억에 남는다”며 “연내 지속된 상생금융 기조를 제외하면 올 한해 금융당국이 일관된 정책 방향성을 보인 키워드는 솔직히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1년 내내 지속된 전방위적 상생압박
이같은 정책적 혼선 속에서도 금융당국이 지난 일 년간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강조한 몇 안 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상생’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은) 은행의 종노릇’, ‘돈 잔치’, ‘갑질’, ‘독과점’ 등 다소 거친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상생 금융이라는 키워드는 올 한해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를 관통해 왔다.
실제로 지난 4월,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례적으로 국내 4대 금융지주를 순차적으로 방문해 금융권의 적극적인 사회적 책무 이행을 주문했다. 주목할 점은 이 원장 방문 이후 해당 지주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소위 ‘상생 금융’이라는 이름의 금융지원 전략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대부분 △자영업자‧소상공인 이자 부담 경감 △한계차주 등 취약층 대출 공급 확대 △당국 주도의 정책금융 참여 확대 △청년 금융 지원 △기존 사회공헌 재원 확대 등의 방식으로 상생금융이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에서만 5000억원 가까운 규모의 상생금융안이 발표됐고, 새해를 앞두고 2조원+α 규모의 ‘상생금융 시즌2′ 방안이 확정됐다. 특히 이러한 기조는 1금융권을 넘어 카드‧보험 등 2금융권으로까지 확산하는 모습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진통은 지속됐다. 무엇보다 해당 조치로 인한 비용 부담이 오롯이 금융사의 몫으로 남았다는 건 여전히 논란거리다. 20조원에 육박하는 이자익을 거두는 등 소위 ‘이자 장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었는데 은행업계에서는 이같은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로 ‘상생금융 시즌2’의 경우, 올해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마련한 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금융당국의 상생압박이 올해가 끝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사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계획에 없던 상생금융안을 지속해야 하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1년 내내 당국 발 불확실성이 컸던 것 또한 사실”이라면서도 “일단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인 만큼 당국의 기조에 발맞춰 다양한 금융지원은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누적된 금융현안, 해결 가능할까
문제는 이같은 각종 정책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엇박자 속에, 연초부터 문제로 제기됐던 주요 금융 현안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잡히지 않는 가계대출 증가세다. 가계대출 폭증을 막겠다면서도 정작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해제하는 등 모순적인 행보가 이러한 결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공급한 ‘특례보금자리론’이 가계대출 폭증의 주범이라는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에도 끝까지 은행권이 공급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원인으로 지목한 건 당국의 기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사실상 대출 폭증의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기면서 당국을 향한 불신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11월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늘어난 1091조900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한 50년 주담대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음에도 주담대 잔액은 오히려 전월 대비 증가폭을 1000억원 가량 키우는 등(5조7000억원→5조8000억원) 좀처럼 흐름이 꺾이지 않고 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올해 못지않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융당국과의 합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기반으로 상생 못지않게 금융권 전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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