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비공개 요청하면 받아주겠다”더니 “어렵다”…공개 소환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진 배우 이선균(48)씨는 지난 10월부터 3차례나 이른바 ‘포토라인’ 앞에 섰다.
특히 숨지기 나흘 전 마지막 조사를 앞두고 그는 변호인을 통해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수사공보 규칙을 어기고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28일 법조계와 경찰에 따르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향정·대마 혐의를 받은 이씨는 지난 10월 28일 첫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유명 배우의 경찰 출석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이씨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1주일 뒤 2차 소환 조사 때도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이씨는 또다시 많은 카메라 앞에서 사과를 반복했다.
이씨 변호인은 한 달 넘게 지나 3차 소환 조사일이 지난 23일로 잡히자 경찰에 비공개 소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의 변호인은 조사 하루 전인 지난 22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이씨가 유명인이긴 해도) 경찰이 이미 2차례나 공개 소환을 했다”며 “이번에는 비공개로 소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이씨 변호인이 비공개 소환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요청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이씨 변호인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비공개로 소환해 달라고 재차 강하게 요청했지만 경찰은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방송기자들이 공개 소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기자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괜히 비공개로 소환했다가 이씨가 (숨어서 들어가는 것처럼) 영상이나 사진이 찍히면 오히려 피의자에게 더 손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건 관계인을 미리 약속된 시간에 맞춰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경찰 수사공보 규칙에 어긋난다.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16조 수사 과정의 촬영 등 금지 조항에 따르면 경찰관서장은 출석이나 조사 등 수사 과정을 언론이 촬영·녹화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불가피하게 촬영이나 녹화될 경우에는 사건 관계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고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씨 측도 지난 5월 2차 소환을 앞두고 “비공개 소환 원칙에 맞게 다른 경로로 출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검찰도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이 비공개 소환을 요청하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보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찰은 사건관계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언론 등과 접촉을 하게 해서는 안 되며 그런 접촉을 권유하거나 유도해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유명 연예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 주목도가 높은 사건관계인은 종종 검찰청 조사실에 들어간 뒤 소환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한다.
이씨는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26일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경찰에 직접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 변호인은 그동안은 어쩔 수 없이 언론에 노출되는 공개 소환 방식에 응했으나 거짓말 탐지기 조사는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변호인은 당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다시 경찰에 출석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앞으로는 원칙에 따라 경찰이 비공개로 소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비공개 소환이 원칙인 것은 맞는다”며 “이씨 소환 일정을 경찰이 먼저 공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3차 조사를 앞두고 변호인으로부터 비공개 요청을 받았다”면서도 “내부적으로 검토해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전날 오전 10시 30분께 서울시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유가족과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다.
son@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