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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韓日)관계에서 불교는 양국이 극심하게 대립할 때도 공통분모로 작용해 중재자이자 가교로 역할을 해왔다.
조계종, 천태종, 진각종에 이어 한국불교 종단 의전서열 4위인 관음종은 한·일우호를 위해 불교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보여주는 사례다. 매년 관음종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市)에서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慰靈齋)를 봉행하고 있다. 이 위령재는 2016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처음 봉행됐다. 이후 관음종 종정 홍파스님은 조세이탄광의 아픔이 일회성 행사로 잊혀지지 않도록 관음종 차원에서 행사를 이어왔다.
조세이탄광은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위치한 해저탄광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2월 3일 강제징용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갱구에서 약 1000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희생됐다. 갱도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해저작업 중이던 광부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현재까지 이들에 대한 유골 수습과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홍파스님은 위령재에 머물지 않고 일본 희생자 모임과 함께 한·일 정부에 유골 수습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유해 발굴은 어렵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부딪히고 있지만 관음종은 한 걸음씩 나갔다.
최근 관음종과 일본 유족회는 일본 야당인 사민당을 통해 일본 정부를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1일 사민당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의 질의에 대해 “현시점에서 유골 조사를 위한 예산 집행 및 새로운 예산 편성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등의 유골에 대해 유족이 그 반환을 희망하는 것에 대해 가능한 한 유족에게 반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한국 정부와 합의 및 협의에 입각해 계속해서 인도적 관점에서 유골 문제에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아쉬운 답변이나 관음종과 일본 유족회가 함께 한 노력은 헛된 게 아니었다.
변화는 민간차원에서 먼저 일어났다. 조세이탄광 희생자의 위패가 봉안된 일본 우베시 서광사 주지스님의 예이다. 우익성향인 서광사 주지스님은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관음종과 유족회의 정성에 감복해 마음의 문을 열다. 유족들의 추모를 허용하고 주지스님이 직접 재단에 향을 올리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한 것이다.
이처럼 한일관계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한국불교계가 나서야 한다. 관음종은 규모로는 조계종, 천태종 등 대형 종단에 못 미치지만, 한국불교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새해에도 진일보한 소식이 들려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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