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대북정책 우회 비판…종북세력 위협 부각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박수윤 기자 = 국방부가 북한을 추종하는 내부 위협세력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발간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장병 정신교육의 방향이 ‘정권 코드 맞춤형’으로 급변하고 있어 일선 부대와 장병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명백한 우리의 적”…대적관 교육강화
26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달 말 전군에 배포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국가관, 대적관, 군인정신 등 3개 분야로 구분돼 있다.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5년마다 개편된다.
5년 전 문재인 정부 때 발간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 등 3개 분야였는데 안보관이 대적관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북한의 위협이 강조됐다.
지난 정부 교재에서 북한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교류와 협력 대상임과 동시에 여전히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기술됐다. 그러나 이번 교재에선 대적관이 강화돼 “우리 국군에게 있어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명백한 우리의 적”으로 규정됐다.
현 교재에는 없는 ‘내부 위협세력’의 위험성도 새 교재는 상세히 기술했다.
교재는 내부 위협세력에 대해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내부의 북한 추종세력을 선동하고 지원해왔다”면서 “특히 한반도 공산화의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자 남한 내부에 지하당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고 기술했다.
북한의 지하당 구축 노력의 사례로는 통일혁명당 사건,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을 꼽으면서 “북한은 지속적으로 남한 내부에 지하당을 구축하고 이들과 연계해 끈질기게 각종 대남공작을 전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방첩 당국이 발표한 북한의 지하당 구축 사례는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이 마지막이었는데 지금도 북한이 구축한 지하당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술해 북한 추종세력의 위협을 과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文정부 종전선언 추진 비판…”북한 비핵화 전제돼야”
이번 교재에는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재는 “우리는 종전선언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냉철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한반도에 지속 가능하고 진정한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실효성 없는 종전선언보다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고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종전선언만 하면 마치 평화가 오는 것처럼 선동해 연합훈련 축소·중단 등 한미의 대비태세를 이완시키고, 평화협정 체결조건 조성 없이 종전선언을 유도해왔다”며 “북한이 종전선언을 비핵화 의지나 조치 없이 한미의 대북정책 변화와 북한의 체제 보장을 위해서 거짓된 주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막판 지지부진한 북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현재 정전상태인 6·25 전쟁을 끝내자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했지만,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비판 속에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유화적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교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를 구걸하거나 말로 하는 평화, 즉 가짜 평화에 기댔던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서술했다.
이어 “과거 변방국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빠져 있던 송의 멸망, 경제적·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음에도 북베트남의 위장 ‘평화협정’에 넘어가 미군 철수 후 2년 만에 패망하고 사라진 남베트남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사례를 들었다.
◇ 이승만·군사정권 ‘폐단’은 기술 안해
현대사 기술도 정부의 입맛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교재는 문민화 이전 권위주의 정부 시기에 대해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오도 발생했다”라고만 썼다.
개정 전 교재의 경우 “수십 년에 걸친 장기간의 권위주의 정부 체제 하에서 민주화를 지연시키면서 부정부패와 과도한 중앙 집중 현상 등 여러 폐단이 나타났고 이는 민주화의 과정에 적지 않은 부정적인 유산을 낳았다”고 기술했다.
아울러 개정 전 교재는 “권위주의적이고 부당한 집권 세력의 권력 남용 등으로 인한 정경유착 등의 부정부패는 정치적 대표의 권위와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정책 추진 및 집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켰다”고 언급, 군부 독재를 비판하는 기술을 넣은 바 있다.
새 교재는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을 “혜안과 정치적 결단으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은 지도자”로만 묘사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한반도 공산화를 저지한 공(功)이 있지만, 6·25전쟁 중 한강 인도교 폭파와 3·15 부정선거, 사사오입 개헌 등 과(過)도 적지 않다. 교재에 이런 과오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정신교육 자료에서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안보 상황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국방부는 새 정신교육 교재에서 내부 위협세력을 강조한 것에 대해 “우리 장병들에게 이러한 세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며 “이를 부정하고 방관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대변인은 내부 위협세력을 부각한 것이 진보 진영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건전한 진보진영을 마치 우리 군이 교재에 내부의 위협세력으로 언급한 것처럼 인식하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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