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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 신규 반도체 공장의 본격 양산 시기를 내후년으로 연기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안에 대량 양산을 시작해야 한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각종 인허가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시기가 뒤로 밀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도 삼성전자의 현지 투자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파운드리(칩 위탁 생산) 사업을 총괄하는 최시영 사장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IEDM 2023’ 기조연설 중 테일러 공장의 대량 양산 시기에 대해 밝혔다. 그는 “테일러 공장에서 내년 하반기 안에 첫 번째 웨이퍼가 나오고 2025년부터 대량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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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2021년 첫 테일러 공장 투자 발표 당시부터 2024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했다. 회사는 현재까지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테일러 공장 대량 양산(mass production)이 2024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내년에 ‘대량 양산’이 아닌 첫 번째 웨이퍼가 나온다고 표현을 미세하게 조정한 것이 최 사장 발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업계에서도 내년 테일러 공장의 본격 가동보다 소량의 장비 세팅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내년 상반기 이후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5000장(5K) 규모 라인 설치를 계획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삼성 파운드리가 평택 3공장(P3)에만 월 2만 8000장 규모 대형 4㎚(나노미터·10억분의 1m) 라인을 구축했던 사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년 테일러 공장에는 시험 라인 격인 ‘원패스’ 라인을 위한 투자만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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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삼성전자가 2년 전부터 170억 달러(약 22조 원)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팹이다. 공장 길이만 1㎞에 다다르며 첫 공장 완공 이후 10개 팹을 더 지을 수 있을 만한 부지도 확보돼 있다. 이 공장의 첫 라인에는 4㎚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이 놓일 예정이다. 미국의 첨단 칩 설계 회사들이 이 팹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테일러 투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할 만큼 현지 행정부의 관심도 큰 프로젝트다.
테일러 팹 양산 시기가 애초 타임라인과 다르게 정해진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꼽힌다. 우선 미국 보조금 지급 지연이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도입하면서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미 언론에서 “바이든 정부가 인텔에 최대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선지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 정부가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펼치면서 삼성전자의 보조금 규모가 줄거나 지급 시기가 뒤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삼성전자 미국 법인도 미국 정치인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촉구하는 행사를 펼쳤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이 자리에서 “삼성 반도체는 30여 년에 걸쳐 47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했다. 삼성이 반도체지원법 결정에 앞서 투자를 결정한 것은 미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적기에 지급해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아울러 미 정부의 건물 관련 인허가 절차도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는 추정 또한 있다. ★본지 12월 5일자 1·3면 참조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도 삼성 내에 상존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던 최악의 반도체 수요 부진을 지나 내년에는 회복세로 접어든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다시 열 만한 강력한 요인이 없어 삼성전자 내 최고위 경영진은 투자 타이밍을 놓고 저울질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시장 상황에 따라 현재의 장비 설치 계획보다 더 지연된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업황 부진이 삼성전자의 보수적 투자 집행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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