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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의 영화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가 선택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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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객의 일본 애니메이션 사랑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 흥행으로 익히 알려졌지만, 일본 실사영화를 대하는 온도는 정반대로 냉랭할 지경이다. ‘100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는 20년도 더 전인 1999년 개봉한 <러브레터>(1995)나 2003년 개봉한 <주온>(2002) 정도다. 지난해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원작 소설과 10대 팬덤의 힘,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 등이 결합한 예외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유일한 일본 실사영화 감독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그의 신작 <괴물>은 호평을 이어가며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감독의 국내 개봉작 중 역대 최고 스코어를 매일 경신하는 중이다. 영화 마니아들이야 오즈 야스지로니 구로사와 아키라니 하는 일본을 대표해 온 감독 이름을 외울지 몰라도 평범한 대중들로서는 그 발음조차 생경하게 느끼는 현실에서, 우리 관객이 일본 실사영화 감독의 영화에 이 정도 관심과 지지를 보인다는 건 이례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일 것이다.

▲ 영화 ‘괴물’ 포스터
▲ 영화 ‘괴물’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랜 시간 믿고 볼 만한 드라마를 연출했고 비교적 기복 없는 결과물을 내놨다. 그야말로 ‘꾸준한 모범생’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12만),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10만), <태풍이 지나가고>(2016, 9만) <어느 가족>(2018, 17만) 등 지난 10년간 국내에 선보인 작품만 8편이다. 당초에는 국내 개봉조차 하지 못했던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이 21년 만인 2016년에 뒤늦게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일,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1998)가 20년 만인 2018년 극장 재개봉한 일은 모두 감독의 이름을 신뢰하는 관객층이 형성된 덕일 것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굴곡진 가족 관계를 편견 없이 관찰하고 관객의 선입견을 보드랍게 깨 주는 미덕을 지녔다. 등장인물은 도박에 빠진 이혼남(<태풍이 지나가고>)이나 물건을 훔치는 도시 빈민(<어느 가족>)처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다. 신작 <괴물>에는 동성의 친구에게 느끼는 각별한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두 소년이 등장한다. 어설픈 선의로 접근했다가는 혐오나 몰이해만 부추길 수 있는 다루기 까다로운 캐릭터들이지만, 감독은 다면적인 에피소드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구성과 눈길을 사로잡는 미학적인 화면 연출로 기어코 관객이 이들의 삶과 감정에 공감하도록 이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장인물의 정서를 지나치게 과장되고 비장하게 표현하는 일본 실사영화 특유의 습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프랑스 제작사와 공동작업으로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의 배우를 기용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을 연출했고, 한국 제작사 CJ ENM의 투자를 받아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등을 캐스팅한 <브로커>(2022)의 메가폰을 잡았다. 1억 명 내수 시장에 안주하는 일본 영화계가 종종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비판을 듣는 와중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독자적으로 보폭을 넓히며 세계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접점을 개척한 셈이다. 일본 실사영화 감독으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장 진격형’인데, ‘K마크’를 무기 삼아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들겨야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한국 토양에서는 동질감을 느낄 만한 성취다.

물론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삶에도 명암은 공존한다. 정작 자신의 고국인 일본 내에서 영화 작업하기가 쉽지 않고, 뜻이 맞는 후배 세대 감독을 찾는 것도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브로커> 인터뷰로 만난 감독은 “일본 정부는 예산을 주면 반드시 간섭한다”는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외를 떠돌다 보면 결국 수 년간 집을 비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안정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진다고도 했다. 요즘 일본의 젊은 감독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삶을 빗대어 “저런 식으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는 자조 섞인 아쉬움을 털어놓은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 영화 ‘괴물’ 스틸컷
▲ 영화 ‘괴물’ 스틸컷

그럼에도 또다시 신작 <괴물>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을 걸 보면,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지닌 저력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학교의 무책임한 방식, 아이들을 어른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등 일본의 일면을 날카롭게 묘사했는데, 그럼에도 고국 일본에 애정을 지닌 일원으로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깊이 있게 다룬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최근 그의 차기작이 한국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과 함께 만드는 드라마 ‘아수라처럼’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만큼, 영화에 이어 드라마에 도전하는 그의 작품 궤적을 우리 관객이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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