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량’서 최후 전투 나선 이순신 역…”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기”
“참된 새로운 시작 위해선 올바른 끝맺음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품”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노량’은 참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관객분들이 이것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한민 감독의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은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당부했다.
이 영화는 1598년 겨울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수군과의 연합 함대로 왜군과 싸운 노량해전을 그렸다. 극 중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자는 명나라 수군 장수 진린(정재영 분)에게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선 안 된다”고 일갈하고는 끝까지 적을 쫓아 섬멸한다.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이 7년간 이어진 전쟁을 어떻게 종결할 것인가 얼마나 많이 고민했겠느냐”며 “다시는 이 땅에 그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 전쟁으로 무려 400만명이 죽었잖아요. 총칼에 죽은 사람들, 굶어 죽은 사람들, 얼어 죽은 사람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그런데도 명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하거나 선조가 ‘그만해’라고 하면 끝을 내야 하는 거고요. 하지만 장군님은 왜놈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보고 결단을 내리신 거지요. 정말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닌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 1편 ‘명량'(2014)이나 2편 ‘한산: 용의 출현'(2022)에서보다 더 외로워 보인다. 휘하 장수들을 대부분 잃고 막내아들까지 왜군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결코 의중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병사들을 지휘하고 ‘영웅다운’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장군님은 그때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그의 마지막을 연기했다는 김윤석은 “가장 치열한 전투의 정점인 상황에서 최대한 아군에게 방해되지 않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1987’에서 박 처장 역을 맡아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대사를 했을 때 ‘이걸 내가 하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노량’에서도 똑같은 심정을 느꼈습니다. ‘장군님의 이 유언을 내가 말하다니’ 했지요.”
전장의 한가운데서 외롭게 숨을 거두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뭉클함과 존경심을 자아낸다.
김윤석 역시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는 좀 쉬시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400여년 전 군인으로 살았던, 쉰세 살 인간의 죽음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위대한 장군의 위대한 죽음이지만 ‘아, 저분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윤석은 만약 이순신 3부작 중 하나를 하게 된다면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은 물론 그간 쌓인 연과 한이 다 담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김 감독이 ‘노량’ 시나리오를 김윤석에게 보내면서 그의 바람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김윤석은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겼다”며 “조선, 왜, 명의 뒤얽힌 관계 등 드라마의 밀도도 굉장히 좋았다”고 시나리오를 처음 본 당시를 떠올렸다.
“‘명량’, ‘한산’에서 최민식 선배와 박해일 씨가 너무나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한 것도 있지만, 일단 이순신 장군님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부담이었어요. 다 내려놓고 기도하는 심정이었어요. 하하. 두 배우분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역할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역시 만만치 않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갑옷과 투구, 칼 등으로 구성된 20㎏을 훌쩍 넘기는 의상을 착용하고 액션 장면을 하다 보니 어느 날엔 코피가 터져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오늘은 절대 갑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윤석은 ‘명량'(1천761만여 명)이 역대 한국 영화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하고, 팬데믹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시점에 개봉한 ‘한산'(726만여 명)도 식지 않은 인기를 보여준 만큼 흥행에 대한 중압감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 흥행하는 것을 보고서 “역시 좋은 영화에는 관객이 몰린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걸 직접 보니 굉장한 쾌감이 찾아오더군요. 한국 영화가 좀 더 관객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시기라서 더더욱 그랬어요. ‘노량’이 ‘서울의 봄’ 바통을 이어받아서 연말까지 쭉 간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또 다른 한국 영화가 연초에 그걸 이어간다면 한국 콘텐츠가 살아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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