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안통’ 출신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
창원간첩단‧청주간첩단, 비슷한 절차로 재판 지연
증거인정능력 두고 검찰-변호인단 오랜 법정 공방
“지연된 정의는 정의 아냐…신속 재판도 헌법상 권리”
시대가 변하며 간첩의 개념과 대남 공작 방식, 형태도 변한다. 1970~1980년대 남파 간첩은 최근 뉴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수사기관에서 말하는 간첩은 어떤 모습이며 이적단체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찬양하는지, 검찰 공안통 출신인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로부터 요즘 간첩 세계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른바 ‘창원간첩단’으로 불리는 자통(자주통일 민중전위) 피고인들이 7일 법원의 보석 결정을 받고 풀려났다. 3월에 구속기소된 이들은 재판을 단 두 차례밖에 받지 않았다.
‘청주간첩단(자주통일 충북동지회)’도 마찬가지다. 2021년 9월 기소된 이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아직까지 내려지지 않았는데 재판부는 이들의 보석을 허가했다.
보석 신청과 재판부 기피신청, 항고, 재항고. 요즘 간첩들의 재판은 이렇게 진행된다.
과거엔 그래도 협조적이었는데…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형사소송법상 1심 최대 구속기한은 6개월이다. 6개월 내에 최대한 재판을 빨리 마무리 지어 1심 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피고인들이 보석으로 풀려나 서로 말을 맞출 염려도 없고 증거인멸도 할 수도 없다.
검찰 내 ‘공안통’으로 알려진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는 “과거에는 중요 국가보안법위반 사건도 집중심리 변호인의 협조 등으로 구속기간 내에 선고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요즘 간첩 재판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방대한 증거조사, 변호인의 절차적 이의 등으로 신속한 재판 진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2014년 서울남부지검에서 기소한 이적표현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2021년에 1심 선고가 이뤄졌다. 2021년 과거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이정훈 연구위원이 다시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구속기간은 벌써 도과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지연은 증거조사가 방대하게 이뤄지는 탓도 있지만 변호인의 절차적 이의 제기 문제도 있다.
요즘에는 간첩 사건 재판은 대체로 이렇게 진행된다. 피고인들이 구속되면 변호인들은 국민 참여재판을 신청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특성상 국민 참여재판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재판부는 그 신청을 기각한다. 이에 변호인은 항고, 재항고를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1~2개월은 금방 지나간다.
변호인은 국민 참여재판 신청을 기각한 재판부에 대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다. 기피신청이 기각되면 이에 다시 항고, 재항고를 한다. 이런 식으로 절차를 반복하다보면 구속기간 6개월은 어느새 가까워진다.
방대한 증거 하나 하나에 “동의 못 합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에 제출되는 증거만 약 1000개. 책으로 따지면 10권에서 많게는 50권. 거의 1톤 트럭 절반에 차지하는 양이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증거를 제시하면 변호인은 여기에 동의 또는 부동의 여부를 알려야 한다. 부동의 할 경우 검찰은 그 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변호인들은 대체로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부동의한다. 그 증거가 명백하게 적법한 문서(과거 판결문, 정부나 국회의 공문)라고 할지라도 일단 부동의한다. 피고인들이 운영한 이적단체 카페 게시물을 출력한 자료도 모두 부동의한다.
감청을 통한 녹음파일, 해외에서 공작원을 만난 장면을 찍은 사진, 북한 노동당 신문 출력물 등 모든 증거를 부동의한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끌어내려면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피고인이 증거 사용에 동의하거나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여돼야 한다.
진술이 기재된 서류(피의자신문조서, 진술조서)는 원진술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인터넷 출력물은 그 인터넷게시물이 웹사이트에 그대로 있는지, 그 내용대로 출력한 것인지를 법정에서 시연해야 한다. 녹음파일의 경우 그 목소리가 대상자의 목소리인지, 녹음파일이 조작되거나 변조되지 않고 원본 그대로인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증거조사를 하는 데에 하루 종일 또는 수십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수원지검에서 기소한 ‘이석기 사건’에서도 증거 능력 인정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검찰 측이 제시한 녹음파일을 두고 변호인들이 ‘불법수집 증거’라며 거부한 것이다. 결국 어렵게 증거능력을 취득했지만 수십 개의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하거나 해시값(파일 특성을 축약한 일종의 암호)을 일일이 대조하는 등 증거 조사에만 하세월이 걸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고 검찰은 이를 입증하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우리나라 증거법의 주요 판례 모두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나올 정도다.
사진 속 ‘그 인물’ 입증 어려워
피고인이 해외에서 공작원을 만난 사진을 법정에 제출됐다. 그런데 피고인은 “사진 속 인물은 내가 맞지만 내가 만난 사람은 북한 공작원이 아닌 재외교포”라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상 북한공작원을 만나야지 회합죄가 되는데 재외교포를 만났다고 인정될 경우 아무런 죄가 안 된다. 이 때 수사기관은 그 사진 속 사람이 북한공작원임을 입증해야 한다.
최 변호사는 “탈북자 중에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했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마침 북한에서 방송한 조선노동당 당 대회 방송을 보니 연단에 앉은 수백 명 노동당 간부 중 그 사진 속 인물이 있었다. 수사기관은 노동당 당 대회 방송 속 인물과 피고인이 만난 사람이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안면 분석 등을 통해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법정에 제출했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증거를 입증했고 결국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해외에서 북한공작원과 만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제출한 경우, 그 사진을 찍은 수사관이 나와서 법정에서 “내가 찍었고, 변조되지 않았으며 적법한 방식으로 찍었다”고 증언을 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이때 변호인은 해외에서 사진 촬영한 것이 주권침해 아닌지, 형사사법공조를 해야지 왜 국내 수사관이 외국에서 수사 활동을 하는지 집요하게 추궁한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수사관의 얼굴과 이름 등 신원이 노출되기도 한다.
세상 바뀌는데…“형사재판 방식도 새롭게 바뀌어야”
최 변호사는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피고인이지만 피고인의 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검사이고, 이를 법리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것은 변호인이며, 모든 것을 종합해 판단해야 하는 것은 판사다. 재판이란 실체적 진실을 밝혀 나가는 과정인데, 그 진실에 접근조차 못하도록 절차에 대한 불필요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무리한 지연을 위한 방어권 남용 등은 자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물론 수사기관도 막대한 증거를 제출하여 변호인이 기록검토조차 못하게 해서는 안 되지만 변호인도 모든 증거를 부동의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변론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만 신속 재판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증거, 전자소송 등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형사재판 방식도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문해 주신 분…
▲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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