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오른쪽 네번째) 대통령과 이재용(왼쪽에서 세번째)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맨 오른쪽) SK그룹 회장이 지난 12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ASML 하이-NA 랩에서 EUV 차세대 노광 기기를 살펴봤습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앞서 1편에서는 EUV 노광기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대당 수천 억 원 가격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죠. 이제 2편에서는 EUV 기술이 대단한 건 알겠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EUV를 쓰게 된 건지 아주 간략하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 대통령 ASML 방문에서의 키워드였던 하이(High)-NA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반도체 8대 공정의 핵심인 노광 공정은 말이죠. 빛으로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게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밑그림인데요. 우리 판화 기법 중에 식각(에칭)이라는 게 있죠. 칼이나 뾰족한 것으로 판화 소재를 파내는 작업이잖아요. 반도체도 똑같습니다. 웨이퍼 위에 빛으로 밑그림을 찍어낸 후에 회로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파내는 에칭 공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며 칩이 만들어집니다.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반도체 시대. 밑그림을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고, 또 얇고 선명하게 그려내야 좋은 에칭을 할 수 있겠죠? 노광 공정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입니다.
CO₂ 레이저와 주석 알갱이의 충돌로 생성된 EUV 빔이 웨이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진제공=ASML
그럼 이제 왜 까다로운 EUV를 꼭 노광 공정에 도입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봅시다. 이걸 설명하려면 ‘레일리의 공식’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한데요. 해상력은 공정상수 K 곱하기 개구수 분의 람다입니다. 자세히 쪼개보면 쉽습니다.
자, 해상력이라는 건 말 그대로 광학기기가 두 점 사이를 구분해낼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회로를 빛으로 얼마나 회로를 정교하게 나타내는 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얇디 얇은 회로를 선명하고 균일하게 찍어내려면 해상력이 낮아져야 합니다. 예컨대 해상력이 3나노라고 하면, 3나노의 미세한 틈도 구분이 가능할 만큼 아주 미세한 회로를 웨이퍼에 새겼다는 얘기죠.
ASML 본사 한 쪽 벽면에는 이 ‘레일리의 공식’이 아주 크게 적혀있습니다. CD는 Critical Dimension, 즉 한계 치수로 회로 폭을 뜻합니다. 사진제공=ASML
이 수치를 낮춰 해상력을 개선하려면 오른쪽 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분자에 있는 람다가 낮아져야 해상력이 낮아지겠죠. 람다는 파장입니다.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더 얇은 회로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긴데요. 그래서 EUV가 도입됐습니다. 범용인 ArF의 경우 파장이 193㎚라면요. EUV는 14분의 1 수준인 13.5㎚입니다. 아주 혁신적이죠? 람다를 낮추면서 해상력이 훨씬 개선되는 조건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성질을 감수하고도 EUV를 선택한거죠.
그런데 반도체 업계에서는 3㎚ 반도체가 끝이 아니죠. 회로 축소로 반도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숙명이자 영원한 과제입니다. 여기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해상력을 더 줄여야 1나노대 반도체까지 생산이 가능할 수 있잖아요. 공정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공정상수 k도 낮췄고, ArF를 EUV로 바꿔서 파장까지 낮췄으니…. 이제 최후로 조절이 가능한 것은 개구수, 즉 NA입니다. 분모인 NA를 키워서 해상력을 낮추겠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개구수. 한마디로 렌즈 크기입니다. 렌즈가 크면 커질수록 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그러면 해상력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이 ASML에서 보고 온 기기가 2나노 반도체용 EUV 노광기, 즉 하이(High)-NA 머신입니다. 웨이퍼 바로 앞에서 빛을 모으는 미러의 크기를 더 크게 키운 머신이라는 얘깁니다.
NA가 0.55로 변하면서 빛과 그것을 튕겨내는 미러 크기가 너무 커지면서 왜곡이 생겼습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기존 반사 구조에서 투영계의 렌즈에 구멍을 뚫고 렌즈의 빛을 ‘티키타카’하는 초고난도의 기술도 구현됩니다. 자료=ASML
기존 EUV 노광기의 NA는 0.33NA였는데요. 다음 버전인 하이-NA는 0.55NA라 미러 크기가 산술적으로 1.67배가 커집니다. 획기적 변화죠. ASML은 0.55NA에서 멈추지 않고 수년 내 0.75NA 까지 구현해내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UV 기술의 정점은 어디까지일지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밌을 듯 합니다.
그런데 하이-NA EUV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렌즈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EUV의 사이즈, 그러니까 빛의 양도 커지게 되면서 기존의 노광기 구조로는 감당이 안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요.
그렇게 되면서 여러 시도 끝에 포토 마스크와 미러의 모양이 바뀌게 되고요. 한 개 패턴도 두번으로 나눠 찍은 뒤 이어 붙이는 형태로 바뀝니다. 또 미러의 크기와 빛 양이 커지면서 노광기 속에 있는 무수한 부품들의 크기도 커져서요. 노광기의 크기가 상당히 비대해집니다. 비대해지는 만큼 전력 관리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이죠.
0.33NA에서 0.55NA로의 변화. 렌즈와 빛 크기가 비대해지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공학 기술을 총동원해 해결했습니다. 사진제공=ASML
하이-NA 시대 광원 모양과 마스크의 변화. 사진=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DB
제일 와닿는 것이 가격일텐데요. 이 장비의 가격은 대당 4000억원입니다. 기존 EUV 노광기 가격의 2배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죠. 그래도 벌써 세계 기라성 같은 반도체 업체들이 ASML 앞에 줄을 섰습니다. ASML은 이 High-NA 1호기의 주인은 인텔이 될 것이라 발표했고요. 인텔은 하이-NA 노광기를 활용해서 2025년에 1.8나노급 18A 반도체를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2호기는 벨기에 imec이 가져가게 되는데요. 벨기에 루벤에 있는 imec 연구실에 하이-NA 장비가 설치돼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ASML은 0.55NA를 넘어 0.75NA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제공=ASML
ASML은 1세대 하이-NA 노광기 EXE:5000을 10대 미만으로 생산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1·2호기는 시장에 알려진 가운데 나머지 하이-NA 기기, 2~3세대 기기까지도 구매 계약이 완료돼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경 사장은 15일 “삼성-ASML 간 공동 연구소에 하이-NA EUV 기기를 들여온다”다고 언급하며 삼성전자도 이 기기를 확보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제 하이-NA 시대는 본격적으로 열렸고, 삼성전자, TSMC, 인텔 간 하이-NA 기기 쟁탈전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주요 반도체 기업 총수는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ASML 클린룸까지 뛰어간 것을 보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 지 예상되시죠?
또한 1편에서 말씀드렸듯 미국이 중국에 EUV 규제를 아주 강도높게 가하고 있는데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화웨이 등 중국 회사와 연구소들도 EUV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죠. EUV라는 기술이 만드는 국제 정세와 흐름까지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EUV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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