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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DMZ, 영국이 먼저 제안…철책은 베트남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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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역사 | 한모니까 지음 | 돌베개 | 540쪽 | 2만7000원

한반도의 근현대 역사는 강대국의 힘 대결에 얼룩진 아픔의 기록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의 기쁨을 맛본 것도 잠시, 국토는 38선을 기준으로 소련과 미국 관할로 분할됐다. 당시만 해도 독립 국가 설립의 과정으로 간주됐으나, 이후 6·25전쟁의 포화는 한반도의 허리를 휴전선으로 갈라놓았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된 ‘비무장지대(DMZ)’는 올해로 70년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몸담으며 한국전쟁과 남북 접경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분단과 냉전, 통일과 평화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DMZ의 과거 기록과 현재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며 평화의 미래를 전망한다.

책의 흥미로운 점은 DMZ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조명한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DMZ를 처음 제안한 국가가 영국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DMZ는 1953년 7월 정전협상 즈음해서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1950년 11월에 처음 제안됐다.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이후 약 5개월만인데, 결정적인 원인은 중국군 참전에 따른 확전 우려였다.

영국은 중국군 참전으로 전쟁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력 완충지대를 설치해 확전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DMZ 개념이 낯설지 않았다. 영국은 1970년 러시아와 협정을 통해 페르시아만을 세 개 지역으로 나눠 그중 한 지역을 중립지대로 설정한 바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승전국 자격으로 베르사유조약(1919)을 통해 독일 라인란트 전역을 DMZ로 설정했다. 1923년에는 연합군 자격으로 튀르키예와 체결한 로잔느 조약을 통해 튀르키예에 DMZ를 설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유고슬라비아 국경, 불가리아와 그리스 국경을 비무장화했다.

당시 미국은 DMZ에 미온적이었다. 영국이 전세를 우려한 것과 달리, 미국은 전세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했고 승리를 예측했다. 또한 DMZ 설치는 중국의 바람이라고 추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1950년 11월8일 미 중앙정보국(CIA)은 대통령에게 “현재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주된 동기는 압록강 이남에 제한된 ‘완충지대’를 구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당시 UN군 총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11월9일 합참에 보낸 전문에서 “(영국이) 북한의 한 지역을 중공에 떼어줌으로써 중공을 달래려 한다”며 “이는 최근 자유세계가 당하는 최대의 패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1950년 10월쯤에는 미국도 한반도에서 중국을 몰아내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 소련 참전에 대한 우려로 DMZ 설정에 뜻을 같이했다. 1953년 전선을 중심으로 각 2㎞씩 물러나 총 4㎞ 폭의 DMZ가 설치되어 70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역사 기록을 통해 상세히 소개한다.

다만 DMZ 설치 의도가 무색하게 DMZ 내에서는 수많은 무력 충돌이 감행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책에는 1967년 4월5일 군사분계선 25m 앞에서 북한군과 미군이 충돌한 ‘오울렛 초소 사건’ 등의 전개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다. 오울렛 초소는 북한과 가장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방한한 미국 대통령의 단골 방문지로 자리매김했다.

저자는 북한이 땅굴 기술을 베트남에 전수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베트남은 1948년 인도차이나전쟁 때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지하 1층 구조로 구축한 터널을 깊이 3~8㎞, 길이 약 250㎞ 규모로 확장했다.

저자는 DMZ에서 땅굴이 발견된 건 1974년 이후지만, 북한은 이미 1960년 초부터 북한 전역에 ‘전 국토의 요새화’ 전술을 구축했고, 당시 노하우를 북베트남에 전수했다고 주장한다. 1965~1966년 북한이 북베트남과 맺은 경제·기술 지원 협정 과정에서 김일성이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 이후 “갱도를 건설해주기 위해 (북베트남에) 사람들을 보냈다”고 한 발언을 근거 삼았다. 통킹만 사건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통킹만에서 작전 중인 미구축함을 공격한 사건이다.

반대로 DMZ 철책은 베트남으로부터 넘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북위 17도선에 설치하던 철책이 1967년부터 한국 DMZ에도 설치됐다는 것. 당시 분계선에는 철조망이나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당시 약속한 대간첩 장비 제공 일환으로 적외선탐지기, 전기철조망 등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저자는 DMZ가 보전한 생태학적 가치와 오랜 시간 고엽제와 벌목 작업에 따른 피해를 동시에 조명한다. DMZ 내 민간인 거주 지역인 남측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측의 기정리 ‘평화의 마을’ 역사도 소개한다. 저자는 그간 한국이 북진통일이란 명분으로 DMZ 설정과 정전협정 관련 논의와 합의에 주체로 참여하지 않아,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과 해석을 바라만 보게 됐다고 지적하며, DMZ가 70년 전 정전의 조건으로 요구됐다면 이제는 평화의 조건으로 자리할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9·19 군사합의로 조성됐던 평화 분위기가 깨지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책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통과하기 위한 ‘앎의 지대’로 독자를 인도한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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