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5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올해 총 13차례의 해외 순방을 마무리했다. 복잡하게 얽힌 국내 현안 속 잦은 순방이라는 지적에도 미국과 일본, 중동 빅3(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주요 우방국과 접촉을 늘리며 안보·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반면, 미일 관계에 편향된 외교로 글로벌 무대에서의 중장기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는 물론 수박 겉핥기식 외교로 되레 국가 간 심화 협력에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올해 다양한 국가 정상을 만나 경제·공급망·안보 협력을 논의한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실익을 더욱 많이 거두도록 정상외교 방향을 정할 것”이라며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며 세일즈 외교와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 실현을 위해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총 13회·19개국(중복 제외 15개국) 순방을 다녀왔다. 총 578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1월 아랍에미리트(UAE), 4월 미국, 6월 베트남, 10월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11월 영국, 12월 네덜란드 등 7개국 국빈 방문과 한일 셔틀외교 복원을 경제 협력에 활용했다.
해외 순방은 모두 공급망 확보·해외수주·첨단산업 협력 등 경제적 성과에 초점을 맞췄다. 외교 측면에서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과 핵·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확장 억제 공조 수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단일국가 방문에선 다각적 성과를 냈다. 올해 1월 UAE 국빈 방문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300억달러 투자를 따낸 데 이어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 때는 각각 156억달러, 46억달러의 계약·MOU를 체결하며 총 502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경제적 수익을 거뒀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지난해 11월 방한해 맺은 290억달러 규모의 계약·MOU를 포함하면 792억달러(약 107조원)에 달한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설계, 반도체 인재 강국인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 반도체 분야 강국이자 우호국 방문을 통해 협력망을 구축했다. 경쟁력 높은 반도체 우방국이 추가된 만큼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리스크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자회의 성과는 평이 엇갈린다. 정상 간 접촉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대통령실과 달리 야권을 중심으로는 실익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96개국 정상 110명을 포함해 총 462명을 만나며 예산 5744억원을 썼지만 ‘참패’를 피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사과와 문책성 관계자 인사도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한 대통령의 국정 장악 능력은 물론 부처가 추진하는 국정과제 역시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인 관점으로는 휘발성 접촉도 쌓아야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다자회의 참석을 계기로 개발도상국·신흥 공업국들과 적극적인 정상 외교를 수행하며 공급망 협력 계기를 마련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유엔총회,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2년 연속 참석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처음 찾았다. 이를 계기로 광물 자원이 풍부한 신흥공업국·개발도상국들과 양자회담을 갖고 농업기술·인프라·ICT 등 지원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확대하기로 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 등 기존 우방국에 치우친 외교로 인한 편향성도 윤 정부가 한계를 보인 대목이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고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한 탓도 있지만, 윤 대통령의 미일 외교 집중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결국 미일 편향 외교는 더욱 고착화하고,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분단국가이면서 통상국가인 한국에 중요한 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라며 “유엔에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중국의 비협조로 대북 압박 제재 효용성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이 정상외교에 대해 느끼는 점이 중요하다”며 “윤 대통령 순방이 국가적 위상을 높이지 못했다고 느끼는 국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된 방향으로 진행된 외교이므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7월 폴란드 방문 당시 극비에 우크라이나로 이동해 전쟁의 참상을 확인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인도·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현직 대통령이 우리 파병군이 주둔하지 않은 전시국가를 방문한 것은 헌정사 최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상 간 외교는 단기간 성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부분이 더 많다”며 “우리 정부가 내년에는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의장국 등을 맡는 만큼 여기에 맡는 역할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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