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2일 납, 구리, 인회석을 활용해 ‘LK-99’라는 결정구조를 만들고 400K(127℃) 임계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며 제조법 등을 담은 논문 2편이 논문사전공개사이트 아카이브에 게재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얻었던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상온 상압 초전도체, LK-99”.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초전도체를 400K(127℃) 이하 조건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가 절대온도 4K(-269℃)에서 발견한 이래 초고압 영하 조건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다. 110여 년 초전도체 개발 역사에서 과학자들은 상온(25℃ 내외)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했지만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거나 상용화하진 못했다.
검증 나선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 결과 공개
‘LK-99’ 검증에 나섰던 국내 학계가 지난 수개월 간 진행한 실험 결과 LK-99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아니라 비저항값이 큰 부도체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13일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는 ‘LK-99 검증 백서’를 공개했고 이같이 밝혔다. 검증위는 경희대·고려대·부산대·서울대·성균관대·포항공대·한양대 등의 연구기관 8곳이 모여 지난 8월2일 구성됐고, 지난 10월 말까지 LK-99 재현 실험을 진행하며 총 5차례 중간 브리핑을 진행한 바 있다.
초전도체(超傳導體)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에 이르러 초전도현상이 나타나는 도체를 말한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고, 자석을 공중부양할 정도의 마이스너(반자성) 특성을 가진 신물질이다.
실용화된 초전도 기기는 모두 저온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표적인 것은 병원에서 볼 수 있는 MRI, 연구를 위한 특수한 목적에 사용되는 SQUID, 입자가속기 등이 있다. 그동안 초전도체는 초저온·고압력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온 상압에서도 가능해질 경우 자가공명장치(MRI)나 자가부상열차, 전력 공급 등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것으로 기대받고 있는 이유다.
“상온이나 저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인 물체는 구현되지 않았다”
검증위는 두 편의 아카이브 논문의 데이터가 제로(0) 저항 및 마이스너 효과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상온 상압 초전도 주장에 대한 문제점이 초기부터 지적 돼왔다고 설명했다.
검증위는 최초 출범 이후 LK-99 원 개발자인 퀀텀에너지연구소의 LK-99 시료를 제공받아 교차측정하고, 발표된 논문의 제작 방법을 이용한 재현 연구를 통한 두 가지 검증에 나섰다. 하지만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이 시료를 제공하지 않아 약 4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교차측정 검증은 이뤄지지 못했다.
LK-99 시료가 확보되지 않아 검증위는 공개된 합성방법에 따른 합성, 고유 방법을 사용한 합성, 단결정 시료의 합성 등 3가지 방법을 활용했는데, 3가지 합성 모두 상온이나 저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인 물체는 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LK-99 원 논문에 담긴 비저항데이터가 보여준 100℃ 근처의 급격한 변화는 이후 연구에서 황화구리(Cu2S) 불순물이 가지고 있는 상전이(외적 조건에 따라 전도체 상태가 바뀌는 것)에 의한 것으로 제안됐다고 검증위는 밝혔다.
검증위가 진행한 실험에서 만들어진 시료 중 일부에서도 100℃ 근처에서 비저항값이 급격히 변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불순물 상의 상전이에 의한 결과로 판단됐다. 불순물이 없는 단결정 성장 연구 결과에서는 LK-99가 상전이가 없는, 저항이 매우 큰 부도체라는 결론이 나왔다. 불순물 없이 균일한 조성을 가지는 단결정 시료에서는 10GΩ 수준의 비저항값이 측정됐다.
이는 LK-99가 근본적으로 부도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검증위는 설명했다.
LK-99 재현 시도는 해외 연구기관에서도 수차례 진행됐다. 8월 초 집중적으로 발표된 논문들에서 LK-99가 초전도에 유리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 담기며 상온 상압 초전도체에 대한 기대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이후 발표된 실험 논문에서 저항 및 자화율 측정 결과가 초전도성을 보여주는 결과는 없었고, 국내와 마찬가지로 불순물이 적은 시료의 경우 상전이가 관측되지 않았다.
“교차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검증위는 원 논문에 발표된 데이터 및 국내외의 재현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원 논문에 보고된 저항 및 자성측정 데이터는 상온 상압 초전도 특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국내외 재현 실험 연구도 저항 0 및 마이스너 효과를 보여주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의 결과는 LK-99가 오히려 비저항 값이 매우 큰 부도체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검증위는 ‘원논문의 데이터와 국내외 재현실험연구결과를 종합해 고려해 보면 LK-99 가 상온 상압 초전도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검증위는 “과학적 발견에 대한 1차적 증명의 책임은 처음 발견한 연구자에게 있다”며 LK-99가 상온 상압 초전도체라는 주장이 일방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인 보편성을 갖는 사실로 입증되기 위해서는 제삼자에 의한 교차측정과 재현 등의 절차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어떤 기업인가?
이 기업은 2008년 고려대 이론물리화학연구실 출신들이 창업했는데 고(故) 최동식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 이론을 바탕으로 초전도체를 개발해 오다가 2021년 김현탁 미국 윌리엄&메리대 교수(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속) 등이 발표한 초전도 관련 이론까지 접목했다고 알려졌다.
지난 8월 머니투데이는 ‘LK-99’ 논문 공개 3~4일 뒤부터 논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퀀텀에너지연구소 본사에 발길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같은 달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 내 파트너사로 삼성SDI·LG이노텍·포스코·한국화학연구원 등을 무단 게재한 의혹도 일었다. 이후 홈페이지는 일시 폐쇄되었고, 현재도 사이트는 ‘사이트 중비 중’이라는 화면 외에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지난 6일 연세대학교 양자산업융합선도단은 상온·상압 초전도물질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퀀텀에너지연구소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 기관은 AI 및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Material Discovery 분야에서의 연구 및 개발을 본격화하기로 했으며, 초전도물질을 비롯한 새로운 물질의 개발과 상용화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연세대학교는 보도자료를 통해 ㈜퀀텀에너지연구소가 1994년부터 상온·상압 초전도물질 개발 연구에 집중해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물질 합성 노하우 및 분석 방법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이석배 대표는 “우수한 연구 인프라를 보유한 연세대와 함께하게 돼 매우 기쁘다”라며 “이번 협업이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초전도물질 연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며, 새로운 상온·상압 초전도물질과 같은 신소재 개발, 물질 고도화 및 상용화까지의 과정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상온 초전도 물질 ‘LK-99’ 발표로 주목 받았던 관련주 주가가 들썩였으며, 연구소 측의 발표가 미뤄지고 있어 투자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8월 말~9월 초 공개적으로 ‘LK-99’ 검증 결과와 초전도체 이론 체계 등을 종합해 발표하겠다고 공식화했던 퀀텀에너지연구소는 현재 잠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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