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특별법(칩스법)을 통한 중국 제재가 국내 기업에 반사이익을 준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국내 산업계 전반을 보면 대(對)중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중간재 대부분이 중국산 완제품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결국 간접적인 하방 효과를 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가 검토 중인 미국 무역법 301조 적용까지 현실화하면 과거 ‘세탁기·철강 반덤핑’ 사례처럼 직접적인 북미 수출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IRA 등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통해 한국 기업이 얻는 수혜는 일부 기업에 국한될 뿐 전체 무역수지에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서 대중국 수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부장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기업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의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하면서 중국산 완성품의 북미 점유율 하락이 국내 중간재 수출 부진으로 이어진 결과다.
산업통상자원부 ‘소부장넷’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주요 소부장 품목인 수송기계부품과 화학물질·화학제품은 대미 수출 비중에서 각각 35.6%, 10.5%를 차지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각각 34.8%, 8.9%보다 소폭 늘어난 수준이다. 미국의 중국 제재로 인해 국내 소부장 기업의 대미 수출이 확대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중 수출 수송기계부품은 5.9%에서 5.2%로, 화학물질·화학제품은 24%에서 23.3%로 줄면서 대미 수출 증가량만큼 대중국 수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국이 달라졌을 뿐 실질적인 반사이익이 없다는 지표다.
반면 대중 제재로 인한 간접적인 악영향은 피하지 못했다. 올해 1~9월 대중 수출에서 전자부품은 312억8200만 달러 규모를 기록했지만 작년 같은 기간(437억4600만 달러)보다 29%가량 줄었다. 또 화학물질·화학제품, 1차 금속제품 역시 각각 23.6%, 23% 축소돼 대중 제재에 따른 간접적인 영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대미 수출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예컨대 전자부품은 올해 9월까지 누적 기준 42억21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80억4300만 달러에서 절반 수준(48%)으로 대폭 줄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중간재 자급화도 수출량 감소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지만 미국 중심인 수출이 국내 소부장 산업 전반에 플러스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여기에 더해 바이든 정부가 검토 중인 무역법 301조 카드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내 기업마저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무역법 301조는 그간 한국을 중국의 우회 수출 경로라며 함께 관세를 부과한 사례도 있었던 만큼 제재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다.
앞서 무역법 301조를 활용해 한국산 철강에 대해 제재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는 불공정 경쟁 등을 이유로 무역법 201조에 근거를 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한국산과 중국산을 포함한 수입산 세탁기, 태양광 제품에 대해 최대 50%까지 관세를 부과하는 조처를 취했다.
이어 불과 2개월 만에 다시 무역법 301조를 꺼내 들고 중국산 철강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또다시 한국산을 포함시켰다.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우회 수출 경로로 여겨지는 한국까지 통제하며 중국을 완전히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최대 25%, 10%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당시 반덤핑 관세로 인해 국내 철강 기업들은 아직도 사실상 북미 시장 점유율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산 철강 제품에 현재까지 반덤핑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법 301조를 다시 동원했을 때 한국 기업에 대한 악영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예를 들자면 배터리 쪽에서 중국은 한국을 우회해서 가고, 우리는 원료 부문 등에 있어 안정적으로 받는 형태로 한·중 합작 시도들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해외우려집단(FEOC) 발표가 나오면서 꽤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한국으로서는 투자가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막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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