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금리·물가 등 경기지표뿐만 아니라 연중 내내 예상치 못한 국제 전쟁의 장기화로 대외 불확실성이 두드러졌던 해다. 여기에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즌까지 닥치면서 정책적 불확실성도 더해지고 있다.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점에는 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리 인하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온 건 아니다.
통상 연말마다 펼쳐진 ‘산타 랠리’도 경기 침체 그림자에 눌려 자취를 감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증권가는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의 대체 투자처로 토큰증권(ST)을 주목하고 있다. 내년 법제화를 앞두고 증시에서 토큰증권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 관련 종목이 벌써부터 급등하는 등 신규 시장에 대한 기대감에 부푸는 모습이다.
ST는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을 말한다. 통상 ‘코인’으로 불리는 가상자산과는 달리 부동산·미술품 등 실체가 있는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한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ST 생태계는 크게 기초자산, ST 발행사, ST 유통 플랫폼으로 구성된다. 기존 증권사들이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추려 증시에 상장시키듯이, 발행사들이 투자가치가 높은 기초자산을 발굴해 이를 기반으로 ST를 발행하고 거래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증권만 거래할 수 있었던 기존의 주식시장과는 달리, 각종 다양한 거래 플랫폼을 통해 상장 및 주문할 수 있게 된다.
ST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20년이다. 당시 부동산, 음악 저작권, 미술품 등을 쪼개어 파는 조각투자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점차 시장이 커지자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적법성 검토에 나섰다. 한때 사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당국에서 증권성이 있는 조각투자를 인정하고 관련 법안 개정에 적극 나서면서 ‘혁신 금융시장’이란 타이틀과 함께 투자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했다. 늦어도 내년 중 법제화가 마무리되고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본격적인 산업 활성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현시점에서 STO가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는 이유는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증시, 부동산 등 전통적인 투자 자산들이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불확실한 대내외 상황과 인플레이션이 상존하는 국면에서 대체 투자처로 토큰증권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토큰증권은 실물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실물자산 자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서 인플레이션 환경에 대응 가능한 자산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물자산의 장점과 가상자산의 탈중앙화 및 유동성의 강점을 가진 토큰증권 산업은 투자 환경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기대감을 반영하듯, 최근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박스권에서 횡보하는 가운데에도 STO 관련 종목들은 급등세를 보이며 들썩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이 STO 관련 종목으로 분류되면서 최근 한 달(11월10일~12월11일 종가 기준) 만에 주가가 85.26% 치솟았다. 같은 기간 블록체인 전문기업으로 STO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갤럭시아머니트리는 82.69%, 갤럭시아머니트리 지분 과반을 보유한 갤럭시아 에스엠은 70.60% 급등했다. 이 외에 아이티센(67.86%)·핑거(57.99%)·서울옥션(52.30%) 주가도 동반 상승세다. 해당 기간 코스피 상승률(4.05%)을 훌쩍 뛰어넘어 STO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하고 있다.
다만 토큰증권의 법제화는 지난 7월 발의돼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자본시장법(장외 거래 중개업자 신설) 및 전자증권법(분산원장의 법적 효력 인정,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신설 등)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 상황에 따라 구체적 시점은 달라질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내년 중에는 입법 마무리가 확실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토큰증권 법제화가 완료되기 전에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및 투자계약증권 발행 승인 등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됨에 따라 관련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성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최근 열매컴퍼니·투게더아트·서울옥션블루 등 미술품 조각 투자사들이 앞다퉈 조각 투자 플랫폼으로의 진출을 선언하며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당국의 승인이 이뤄질 경우 미술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본격적인 조각투자 서비스가 시행된다. 연내 STO 장내 거래소가 규제 샌드박스로 승인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초 금융당국은 전자상거래법에 의해 조각투자 사업을 하던 플랫폼들에 공모를 위한 제반 여건을 충족할 것을 요구했고, 이 기준을 맞춘 조각투자 플랫폼들이 STO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토큰증권이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받고 STO가 제도권에 편입되기 시작함을 알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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