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올해 마지막 해외 순방에 나선다. 우리나라의 유럽 내 제2 교역국인 네덜란드를 찾아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양국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심화에 나설 방침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사절단과 함께 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인 ASML을 찾아 협력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빌렘-알렉산더 국왕의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순방은 1961년 한-네덜란드 수교 이후 최초로 성사된 한국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장 많은 곳이자 독일에 이은 2대 교역국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분야 우리의 핵심 파트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으로 교역·투자 및 반도체 분야 협력은 물론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의 핵심은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구축 및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심화’다. 윤 대통령 역시 전날 공개된 AFP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국빈 방문은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룰, 보다 체계적인 제도적 틀이 마련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반도체 협력 논의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와 한국은 ‘경제가 안보이고 안보가 경제’인 시대라는 공감대하에 양국 간 경제안보 분야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도체 동맹’을 기반으로 양국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심화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현지에서는 윤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정상회담 및 업무 오찬에서 반도체 대화체 신설, 양해각서(MOU) 체결, 공동사업 발굴 협의 등을 논의한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산업에서의 반도체 역량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가 산업, 기술, 안보 측면에서 전략자산으로 부각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며 “기술패권 경쟁, 공급망 재편 등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는 한-네덜란드 협력관계의 중심축”이라며 “세계 반도체 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은 양국 모두의 핵심 이익과 직결된다”고 평가했다.
12일 예정된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 본사 방문은 이번 순방의 하이라이트다. 윤 대통령은 “ASML 방문은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기업의 역량을 결합해 반도체 가치사슬의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하는 세부안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와 내년에 출시될 최신 노광장비 생산 현장을 시찰하고, ASML을 포함해 주요 반도체 기업인들과 함께 전문인력 양성,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ASML은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인 노광장비를 세계 시장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 탓에 우리로서는 반도체 공급망을 크게 확장할 기회다.
윤 대통령은 해외 정상 최초로 ASML의 클린룸도 방문한다. 빌럼-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도 함께한다. 클린룸은 실내 공기 중의 먼지, 미립자를 최소로 유지하고, 실내 압력, 습도, 온도, 기류의 분포와 속도 등을 일정 범위 내로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방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T 관련 제품들은 모두 클린룸에서 생산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네덜란드 혁신 현장을 방문함으로써 우리 정부로서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의 일환으로 화성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나름의 힌트와 통찰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우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함께하는 만큼, 양국이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상호 보완적인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인재 양성 등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경제 협력 분야도 확대한다. 윤 대통령은 안보 협력뿐 아니라 교역 분야를 방산, 물류, 농업, 과학기술, 교육 등 경제 분야 역시 전방위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양 정상은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국 간 ‘경제·안보 대화체’를 신설 및 정례화하고, 한-네덜란드 간 워킹홀리데이 연간 상한선을 늘리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북핵, 우크라이나 지원, 중동 문제와 관련해 긴밀한 공조 체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 또한 국방·방산 분야 고위급 교류와 방산기업 간 협력 촉진 방안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 사이버 안보 같은 신흥 안보 분야의 양국 협력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밖에 윤 대통령은 116년 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리더잘'(기사의 전당)을 방문해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는다. 국권회복, 독립 운동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정신을 되새기고, 강력한 국방력과 글로벌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유 민주주의와 세계평화 수호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