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전동화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자동차 엔진과 소재, 부품뿐만 아니라 연료를 채우는 방식까지 기존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의문점이 생겨납니다. ‘비 오는 날 전기차를 충전해도 될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이에 IT동아는 전기차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살펴보는 ‘EV(Electric Vehicle) 시대’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전기차 보급 전망에 관한 설왕설래가 많아졌습니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많은 국가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약속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생산 과정보다는 자동차 판매 후 주행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친환경차, 특히 전기차 보급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큰 폭으로 증가해 오던 전기차 수요가 최근 주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차 보급이 2013년 20만 대에서 10년 만인 2023년 1400만 대에 육박해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산업이 1800년대 말에 태동한 이후 2000만 대의 판매를 달성하기까지 약 5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전기차 판매 2000만 대 달성에는 15년 정도가 소요될 전망입니다.
최근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 속도가 느려지자, 원인 규명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높은 가격과 불편한 충전 인프라가 주요 원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전기차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하거나 구매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충전기 보급을 확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신규 건물에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했습니다. 2022년 1월 28일부터 새 아파트는 총 주차대수의 5%를, 기존 아파트는 2% 이상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지자체별로도 전기차 지원 조례를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지자체 중 가장 큰 경기도는 2017년 6월부터 500세대 이상 아파트, 100면 이상의 주차 공간을 보유한 건물에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했습니다.
주요국 정부도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했는데, 영국 정부는 모든 신축 주택에 1개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특정 장소에 설치하고 있는 공용 충전기만으로는 충전의 불편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동주택 거주자들은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충전기 설치 의무화로 인해 주차난이 가중된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전기차 보급과 충전기 설치를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일어 왔습니다. 전기차 소유자들이 충전 불편함을 호소하자, 주요국 정부는 충전기 설치를 가속하고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소비자들이 충전기 위치와 가용성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이 충전기를 주택에 설치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소유자 중 공용 충전기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긴 충전 대기 시간에 불만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급속 충전기보다는 완속 충전기 보급이 많고 충전 문화도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같이 개인 주택 소유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자가 충전기를 설치해 상대적으로 충전 시간에 대한 불만이 낮지만, 충전 시간 단축을 위해 공용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면 비용이 치솟습니다. 일각에서는 급속충전이 전기차 내구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전력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주장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 재정을 충전기 구축에 무한정 투입하기도 어렵습니다. 최근 민간사업자들이 충전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 조성 단계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충전기 설치 의무화를 통해 초기 시장을 형성해 줌으로써 충전기 설치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충전기 설치 의무화는 전기차 소유자들이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전기차 보급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충전기 설치 의무화로 충전기 설치가 증가하면 당연히 전기차 보급도 증가할 것입니다. 인류가 전기차 보급 증가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고 대기 환경을 개선해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기차 보급이 필수적인데, 충분한 충전 인프라가 선제적으로 구축돼야 합니다. 일부 불편함이 있더라도 전기차 충전기 설치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충분하고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이항구 원장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와 연관산업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과 호서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를 겸직했으며, 2023년 2월부터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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