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단체 “기업에 소비자 고지 책임 부여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정부가 주요 생필품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와 감시에 나서겠다고 밝힌 가운데 식품·유통 기업들은 소비자가 제품 변경 내용을 쉽게 알도록 고지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이를 준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 인상으로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인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19일 연합뉴스가 지난해와 올해 제품 용량을 줄인 식품기업 가운데 7곳에 확인한 결과 7곳 관계자 모두 제품 용량을 줄일 때 소비자에게 공지하도록 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들 기업 측은 정부 조치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소비자에게 제품 용량 축소 사실을 알리는 것은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식품기업들은 원가 상승 부담이 커지자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핫도그나 만두, 유제품, 초코바, 과자, 김 등의 용량을 줄였다. 예를 들어 핫도그는 한 봉지 5개에서 4개로, 김은 10장이 들어있던 것이 9장으로 줄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당연히 따라야 할 것 같다”고 했으며 다른 업체도 “법이나 시행령이면 반드시 지켜야 할 테고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해도 따르는 게 기본적일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본다. 최대한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료를 덜 쓰거나 값싼 것으로 대체해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은 소비자가 ‘슈링크플레이션’보다도 알아차리기 어려워 더욱 문제로 꼽힌다.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가격을 내리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것이다.
제품의 질을 떨어뜨린 사실이 알려진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자 고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경우 “무조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식품기업 관계자는 “지금 제도도 없는데 소비자 고지를 안 했다고 비난하면 억울하다”면서 “식품업체만 고지할 것이 아니라 유통채널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측도 “제조사와 유통사가 명확히 고지하도록 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안 따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마트를 찾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 팔 경우 판매사의 자율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함께 제품 내용물이 바뀌었을 때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소비자 고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는 불확실하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을 “꼼수”라고 비판하면서도 정부 가이드라인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선 소비자단체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연합뉴스 통화에서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만 답했다.
이에 대해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을 감시한다는 정도로 얘기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감시 활동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사업자에게 (소비자 고지) 책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업자에게 책임을 주고 나서 감시체계가 움직이는 것이 순서”라면서 “정부가 다른 규제보다 이런 것을 강력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여러 나라는 제품 용량이 바뀔 때 소비자에게 고지하도록 의무화했거나 할 예정이다.
이미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부터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해당 기업이 변경 전과 후의 용량, 변경 수치와 비율을 6개월 이상 포장에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했다. 예를 들어 네슬레의 초콜릿 드링크에는 ‘새로운 중량'(NOVO PESO)’이라는 표기와 함께 ‘200㎖가 180㎖로 20㎖(10%) 줄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프랑스는 기업이 제품 용량을 줄일 때 소비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법을 만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는 지난달 프랑수아-필립 샴페인 산업장관이 ‘슈링크플레이션’처럼 소비자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적발하고 조사하는 ‘식료품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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