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서 ‘비닐 포장 담배’에 ‘마약 의심’ 신고…학생들 “불안”
호기심 자극·마약 이용 추가범죄 가능성에 각 대학 보안 강화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오늘 낮 중년 여성이 담배 관련 설문조사를 한다며 비닐에 담긴 담배를 무료로 제공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반 담배와 달라 보였다는 제보에 따라 현재 경찰에 신고한 상태입니다.”
지난 2일 저녁 세종대 총학생회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공지가 올라왔다. 사진도 첨부됐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비닐 포장에 담배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포장이 허술하고 겉에 별다른 표식도 없어서 진짜 담배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만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공지를 캡처한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마약 아니냐”, “대마일 수도 있다”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마약일 수 있다고 의심한 한 학생은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진짜 담배였다. 한 유명 담배 회사가 대학 캠퍼스에서 판촉 행사를 한 것이다.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마약의 급속한 확산으로 대학가에 커지는 우려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학생들이 ‘비닐 포장 담배’를 보고 놀란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달 서울 광진구 건국대와 마포구 홍익대, 경기 성남시 가천대에서 액상 대마 판매를 광고하는 명함형 전단이 연달아 발견됐다.
경찰에 잡힌 40대 남성 A씨는 “생활비 마련을 목적으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 대상으로 마약 광고 명함을 배포한 후 사기 범행을 하려 했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20대 초반 학생들이 대부분인 대학가에서 마약으로 호기심을 자극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유흥가도 아닌 대학 캠퍼스에서 마약 판매 광고물이 유포된 이후 학생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3일 건국대 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 김채원(20) 씨는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길거리에서 마약 광고를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A씨가 뿌린 마약 광고물을 학교에서 직접 봤다는 건국대생 이제현(26) 씨는 “카드에 혹시라도 약물이 묻어 있을까 봐 건드리지도 않았다”며 “광고를 보고 이 정도로 마약이 일상에 가까워졌나 싶었다”고 했다.
세종대 캠퍼스에서 만난 신선우(19) 씨는 “건국대 (마약 광고) 소식을 듣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 총학생회 인스타그램에 그런 공지가 올라와 놀랐다”며 “앞으로는 정당한 목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 응할 때도 불안함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다. A씨 범행이 일어난 이후 건국대와 홍익대는 순찰 강화에 나섰다.
건국대 관계자는 “보안을 강화하고 각 건물 관리자에게 거동이 수상한 사람에 대한 신고를 철저히 해달라고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관계자는 “재학생 중심의 교내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학교도 경비 강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세종대는 인근의 건국대에서 마약 광고 카드가 발견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같은 광고물을 발견하면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내용의 긴급 공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세종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긴급 공지의 연장선상으로 이번 담배 판촉에 반응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때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신고하라고 권하고 학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호기심을 노리고 마약을 퍼뜨리거나 마약을 이용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대학사회 내부의 자구 노력과 함께 사회 전반의 대책 역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을 지낸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학교와 총학생회, 학보사 등에서 ‘마약을 한번 하면 영원히 끊을 수 없다’고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기관의 수사도 중요하지만 학생 사회 내 자정 활동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대학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나라에 만연한 마약 문제 중 하나가 튀어나온 정도에 불과하다”며 “마약 수요와 공급을 차단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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