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육성 전문가이자 덕장으로 명망을 떨친 유정민 감독이 신생 ‘Aptive BC(U-18)’ 사령탑으로 새 도전에 나선다. 지도자로서 행복하기 위해 도전을 택했다는 유 감독은 선수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단 자신감도 내비쳤다.
유 감독은 2015년 서울고 야구부 사령탑으로 부임해 9년 동안 아마야구 무대에서 덕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유 감독은 강백호(KT), 정우영(LG), 이재원(LG), 안재석(두산), 이병헌(두산), 이재현(삼성), 김서현(한화) 등 많은 프로 진출 선수를 배출했다. 여전히 규정을 교묘하게 피한 ‘혹사’가 잔재한 고교야구 판에서도 유 감독은 ‘자율야구’와 ‘관리야구’를 대표하는 아마추어 지도자로 손꼽힌다.
유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치적으로 남는 전국대회 우승이 아니라 제자들의 진로와 프로 무대에서 성장이다. 최근 4년 동안 서울고는 많은 KBO리그 신인 지명 선수를 배출했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 안재석(두산) 송호정(한화) 조건희(LG) 최우인(롯데) 김재중(NC) 문승진(한화)
2022년 신인 드래프트 이병헌(두산) 이재현(삼성) 조세진(롯데) 주승빈(키움) 문정빈(LG)
2023년 신인 드래프트 김서현(한화) 이준서(LG) 김도월(KIA)
2024년 신인 드래프트 전준표(키움) 여동건(두산) 소한빈(롯데)
이렇게 굵직한 육성 성과를 거둔 유정민 감독은 최근 서울고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울고와 9년 동행을 마친 유 감독은 신생 BC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MK스포츠가 유정민 감독을 직접 만나 새 도전에 나선 배경을 들어봤다.
먼저 9년 동안 머물렀던 서울고를 떠난 얘길 안 꺼낼 수 없습니다.
9년 동안 서울고에서 희로애락을 다 겪은 느낌입니다(웃음). 우선 서울고에 감사한 게 제가 현역 시절 크게 뛰어난 선수거나 경력이 뛰어난 지도자가 아니었는데 기회를 얻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구한 야구 스타일을 입히려고 노력했고, 그 성과가 프로 무대에서 제자들의 성장으로 나와 기뻤어요. 2년 연속 프로 무대 신인왕(강백호, 정우영) 배출도 정말 뿌듯했습니다.
서울고 출신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 야구를 잘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처음 서울고에 부임했을 때 주변에서 그렇게 고교야구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길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도 9년 동안 제 소신대로 밀고 간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임 초반에 선수들 머리를 기르게 한 것도 제가 고교야구 메인 무대에선 최초였죠(웃음). 머리 짧게 자른다고, 핸드폰 못 쓰게 한다고 야구를 잘 할까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9년 동안 서울고에서 쌓은 야구관이 궁금해집니다. 먼저 투수 파트에선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까.
확실히 저는 고교 무대부터 단점보다는 장점에 더 집중해서 선수들을 보려고 합니다. 보통 구속이 빨라도 제구를 먼저 잡으려고 하잖아요. 저는 학교 전국대회 우승을 위해서 ‘볼질’ 안 하는 투수를 일부러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투구 폼이 거칠어 보여도 자신이 편안해 하고 장점으로 볼 수 있다면 크게 건드리지 않았어요. (이)병헌이나 (김)서현이 같은 케이스가 그런 방향성이었죠.
야수 파트에서도 정형화 된 지도 방식이 아닌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들었습니다.
가장 신경 쓴 게 야수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습니다. 전국대회에서도 정말 중요한 상황이면 번트 지시를 하지만, 선수가 번트를 대기 싫어하는 게 느껴지면 그냥 강공을 지시하기도 했어요. 또 상대 실책을 노리는 그냥 갖다 맞히는 스윙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죠. 그냥 타석마다 삼진을 먹더라도 있는 힘껏 자기 스윙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재현이 같은 경우가 그런 부분에서 잘 성장한 사례죠.
이재현 선수(삼성)는 1년 차부터 자기 스윙을 하는 부분이 프로 현장에서도 놀랐다고 말합니다.
그런 강한 스윙에 대해 프로 무대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지도자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거니까요. 자기가 하고 싶은 스윙을 소신 있게 이어간다면 재현이처럼 성공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수비에서도 재현이가 정말 안정적인데 학교에 있을 때부터 하고 싶은 수비 스타일을 존중해줬습니다.
수비도 이미 고교무대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견고하게 쌓은 느낌입니다.
보통 고교야구에서 러닝 스로나 모험적인 수비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큰일 나거든요(웃음). 저는 오히려 그런 과감한 플레이를 계속 주문했습니다. 고교 선수들은 그렇게 도전하면서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전국대회 성적을 위해 실수 없는 안정적인 수비만 해라? 그렇게 버릇이 들면 프로 무대에 올라갔을 때 수준이 달라지는 타구 처리에서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이 고등학교 무대에서 우승하려고 그렇게 야구하는 건 아니잖아요. 프로 무대에서 정말 좋은 선수가 되는 게 최우선입니다.
서울고 9년 동행을 뒤로 하고 신생 BC 사령탑을 맡은 배경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기존 제도권 학교 야구부 환경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지도자로서 내가 행복한 길을 걷고 있나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마침 좋은 제안이 와서 고민 끝에 신생 BC 사령탑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결정이 나니까 오히려 더 후련하고 설레는 기분입니다. 지도자가 행복해야 선수들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웃음).
신생 클럽 팀 이름인 ‘Aptive’는 어떤 의미입니까.
신조어로서 직역하면 ‘적성에 맞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Providing, contributing to’라는 의미로서 받아들이면서 변화한다는 여러가지 뜻을 포함한 단어입니다. 저희 클럽 팀 목표는 팀 구성원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책임감과 정직함 그리고 열정과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우리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클럽 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저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답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선수를 지도하는 감독이란 직책을 가지고 학생들의 장래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한사람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국내 아마추어 야구시장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다 보니 클럽 팀 창단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 건 욕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 팀 목표와 비전처럼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책임감과 정직함, 열정과 선한 마음을 가진 학생선수를 배출해 내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기존 고교 야구부와 다른 Aptive BC의 장점을 꼽을 수 있을까요.
먼저 과학적인 기기활용을 이용한 측정과 데이터 제공입니다. 드라이브라인, 블라스트 모션분석 기기(랩소도) 등 최신의 기기도입으로 선수 개개인의 운동능력을 측정하고 그 결과인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또 미국 IMG Academy 교육시스템과의 협업입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스포츠아카데미 IMG Academy의 체계적인 교육훈련방법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동시에 1년 1회 미국 현지 전지훈련을 통한 시설 및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키울 계획입니다.
모바일 앱을 통한 자기주도적인 훈련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훈련방식에서 착안해 각자의 특성에 맞춘 훈련계획을 모바일 앱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매일매일 자기스스로 맞춤훈련을 찾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 훈련방식은 단체훈련보다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훈련의 효율성을 월등히 높여주게 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야구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에 묶여서 제공하지 못했던 통합훈련시스템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학교야구부훈련-체력단련-기술레슨 등 학교와 체력 단련장 및 레슨장에서 따로 받던 교육을 클럽 팀에서 모두 통합해 제공할 것입니다. 일관성 있고 통합적인 시스템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야구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곧 입단 설명식과 창단식을 연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ptive BC에 관심이 있는 학생선수 혹은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저희가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길인 건 사실입니다. 기존 제도권 밖에 있는 클럽 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건 맞으니까요. 그래도 Aptive BC를 선택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프로 무대에서 최고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로 키워보겠습니다. 학생들이 행복하게 야구할 수 있도록 지도자로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역삼동(서울)=김근한 MK스포츠 기자
김근한 MK스포츠 기자(forevertoss@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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