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했습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이 기사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볼 건 많은데, 정작 볼 게 없는 시대. 그럴싸한 스토리라인에 스타성이 출중한 배우들을 끼워 넣어 그저 ‘볼만한’ 작품을 만드는 레퍼토리가 반복되던 영화 산업에 이단아가 등장했다. 영화 ‘거미집’이 그 주인공이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송강호를 중심으로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장영남, 박정수가 각기 다른 이해로 좌충우돌,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배경은 1970년대, 김열 감독의 촬영 현장과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이 교차된다.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흑백 필름과 다소 과장된 연기 등 당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러모로 낯선 맛이다. 하지만 진지함을 거두고 풍자와 코믹함을 섞어 지루함이 느껴질 만한 요소를 말끔하게 제거했다. 길을 걷다 무심코 들어간 음식점이 블루리본 3개를 보유한 맛집인 느낌이랄까. 처음 먹어보는데, 괜찮다.
러닝타임 132분 내내 웃음이 터지는 데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몫한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과 스태프를 밀어붙이지만 배짱은 없는 김열 감독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재촬영 여부를 판단할 국장이 촬영 현장을 찾자 줄행랑 치는 김열 감독, 그러니까 송강호의 연기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어느 날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바뀐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민자(임수정 분), 오 여사(박정수 분)의 까탈스러움과 나사가 빠진 듯한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분), 새침한 신예 한유림(정수정 분), 김열 감독을 열렬히 지지하는 신미도(전여빈 분)의 앙상블이 영화의 맛을 더한다. 영화 속 영화의 배우들이 선보이는 1970년대 특유의 연기톤 또한 흥미롭다.
독특한 앵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음악, 당대로 빨려 들어간 듯한 생생한 세트 구현도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앞서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봐왔듯 김지운 감독만의 세련된 연출력이 ‘거미집’에서도 빛을 본다.
쿡쿡 찌르는 코믹함에 웃음이 나지만 결코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왜 만드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감독이 내린 해답이 영화에 담겼다.
풀어야 할 숙제는 대중성이다. 영화 감독의 개인적인 고민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그들만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영화 ‘거미집’은 오는 27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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