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년배, 그러니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플레이어에게는 PC가 훌륭한 게임기였습니다. 패키지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가난한 학생이 항상 새로운 게임을 즐기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싸기도 하고, 용량도 적지 않고, 어렵게 깔았더니 재미가 없기도 하고…
거기서 오던 갈증을 달래주던 게 바로 플래시 게임입니다. 사양은 낮고 빠르게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던 데다가 독특한 콘셉트의 게임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선택되어야 했으니 말이죠.
그렇게 선택된 게임,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 시절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즐겼던 게임 중에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여성 둘이 서로 뺨을 때리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게임의 제목은 ‘장미와 동백’, 싸대기가 적중했을 때의 상쾌한 타격감, 싸대기를 휘두르듯 마우스를 움직이는 특유의 조작 방식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죠.
누군가가 한국어 번역을 해준 덕분에 게임의 스토리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서민 출신으로 귀족 가문 츠바키코지 가에 들어간 ‘츠바키코지 레이코’가, 남편이 사망한 뒤 구박만 받다가 봉기해 싸대기 하나로 집안을 평정한다는, 게임 플레이만큼 독특한 내용이라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이제는 추억의 게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의외로 2020년에는 스마트폰 버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건 무려 한국어를 공식으로 지원하는데, 우리가 플래시로 접했던 그 초월번역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알고 그런 거지…
아무튼 그 ‘장미와 동백’이 ‘호화찬란 버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9월 19일 닌텐도 스위치로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 추억에 있던 1편 ‘전설의 장미 며느리’, 해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2편 ‘복수의 하얀 동백’, 2편에 등장했던 하녀가 주인공인 ‘월드 유스편’, 츠바키코지 가문의 장녀 시즈카가 주인공인 ‘평온한 동백의 일상’, 그리고 니고로의 또 다른 명작 ‘LA-MULANA’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LA-MULANA 편’의 5개 시나리오를 한 편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부제가 딱 들어맞는 구성이네요.
특유의 스토리, 웃음이 절로 나오는 캐릭터 묘사도 여전한데, 이거는 아무래도 직접 즐기시는 게 낫다고 생각해 프리뷰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이번 ‘호화찬란 버전’에서 추가된 게임 플레이 요소를 소개해보려고 해요.
먼저, 조이콘 모션 조작의 추가입니다. 한쪽 조이콘을 들고 휘둘러 싸대기를 날리거나,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조작이 가능하죠. 공격 턴에는 A버튼을 누른 상태로 앞으로 휘둘러 싸대기를 날리고, 방어 턴에는 R버튼을 눌러 뒤로 휘두르면 회피를 합니다. 회피에 성공하면 바로 A버튼을 누르고 앞으로 휘둘러 반격도 가능합니다.
특히, 싸대기를 날릴 때는 휘두르는 정도에 따라 다른 강도의 공격이 나가는 것도 독특합니다. 적당히 휘두르면 약하게 날리고, 세게 휘두르면 세게 날리거든요. 그리고 아주 살짝 휘두르면 원작에 없던 요소인 페이크를 줍니다. 어려운 상대는 페이크로 회피를 유도한 다음에 바로 휘둘러 확정타를 먹일 수도 있지요.
조이콘 모션 조작 외에 닌텐도 스위치의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터치 조작도 가능합니다. 조이콘 모션 조작에는 없는, 상대의 약점에 스와이프해 크리티컬을 날리는 원작의 요소를 여기서 그대로 즐길 수 있어요. 페이크는 화면을 살짝 스와이프하는 식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앞쪽으로 살짝 휘두르면 실수할 가능성도 있으니, 캐릭터 쪽으로 살짝 스와이프하는 걸 권장합니다.
다음으로, 게임의 규칙의 변화입니다. 스마트폰 버전까지는 공격 턴 동안 얼마든지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실력이 좋으면 공격 턴 한 번에 두 송이 이상의 꽃을 떨어뜨리기도 했죠. 플레이에 통달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구조지만, 통달하기까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방어턴에는 상대의 노도와 같은 연속 공격을 피해 없이 막아내야 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높은 난이도로 올라가면 부조리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호화찬란 버전’에서는 공격턴에는 한 번의 공격만 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맞든 빗나가든 일단 한 번 휘두르면 그걸로 턴이 끝나는 거예요. 방어턴에서도 한 번만 공격을 피하면 됩니다. 상대의 사전 동작과 실제로 공격이 오는 타이밍을 파악하면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지요. 물론, 상대에 따라서는 한 번에 두 번 공격을 해오거나 페이크를 어지럽게 걸어오는 상대도 있어서 방심하면 원작처럼 노도와 같은 싸대기를 맞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조리하게 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좋은 변화점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대결 모드 ‘둘이서 싸다구편’이 추가됐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조이콘을 하나씩 쥐고 싸대기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페이크의 추가로 상대를 놀리며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대전툴이라고 봅니다.
순수 피지컬 대전 게임이기에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재미가 없기도 한데, 그에 대한 대책도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1P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장미), 2P는 시나리오 모드에 등장하는 적 캐릭터(동백)으로 플레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동백 캐릭터들은 시나리오 모드에서의 체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거든요. 실력이 부족한 쪽이 동백을 잡으면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미와 동백 – 호화찬란 버전’은 단순하지만 상쾌한 타격감과 높은 몰입도를 자랑하는, 우리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싸대기 배틀의 정수를 새로운 플랫폼에 잘 담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15,560원으로 꽤 저렴한 편이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플레이어는 물론,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길 게임을 찾는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많은 플레이어의 선택을 받은 게임은,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요.
여담으로 즐길 때 조이콘을 세게 휘두르는 것은 지양해주세요. 게임의 분위기를 타고 신나게 휘두르면, 다음날 아침 오른쪽 어깨와 팔이 쿡쿡 쑤시는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추억 속 그 재미는 여전하지만, 우리의 몸은 추억 속 어린 시절과 너무 멀어진 거 같아 조금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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