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성을 강화한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으레 뒤따르던 ‘가격 인상 행진’에 최근 예외 사례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여파로 매년 가파르게 치솟던 신차 가격이 진정세로 돌아설 조짐이 나타난다는 기대도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연식 변경 모델 ‘2024 아이오닉6’의 트림 중 ‘롱레인지 익스클루시브 플러스’는 이전 모델 대비 70만 원 인하됐다. 나머지 트림들은 5200만∼6370만 원으로 가격을 동결했지만, 추가 금액을 냈던 일부 선택 품목들을 연식 변경 모델에선 기본 장착해 사실상 가격을 인하한 효과가 있다.
KG모빌리티의 연식 변경 모델인 ‘2024 토레스’도 트림별로 가격을 동결하거나 55만 원씩 인하했다. 이로 인해 본래 2852만 원이었던 토레스의 시작가가 이제는 2797만 원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르노코리아의 경우에는 기존에 판매 중이던 ‘QM6 2024년형’ 제품을 재단장한 뒤 이번 달부터 트림에 따라 가격을 41만∼200만 원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완성차 업계는 차량의 상품성을 개선한 모델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가격도 수백만 원씩 올려왔다. 3년 전쯤부터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차를 돈 주고도 제때 못 사는 상황이 발생하자 신차의 가격 상승폭은 더욱 커지게 됐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소비자들의 새 승용차 평균 취득가액이 3130만 원이었는데 2019년 3291만 원, 2020년 3622만 원, 2021년 4040만 원, 2022년 4369만 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후 자동차 부품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차량 생산이 원활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완성차 업체들이 주력으로 내세우던 모델 중 판매가 부진한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가 지난해 야심차게 내놓은 전기차 아이오닉6의 경우 지난해 11월 월간 판매량이 3905대까지 치솟기도 했었지만 지난달 월간 판매는 400대로 주저앉았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6월부터 3개월 연속 400대 수준의 판매량이 이어지고 있다. KG모빌리티의 주력 상품인 토레스는 지난달 1592대가 팔려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56.2% 감소했다. 르노코리아의 QM6도 지난달에 685대가 팔리며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68.8% 줄어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이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을 내놨지만 이러한 흐름이 전 차종으로 퍼지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업체들이 여전히 인기가 많은 모델에 대해서는 굳이 가격을 깎을 필요성이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판매 실적이 좋은 기아의 쏘렌토와 스포티지는 7월과 8월에 각각 페이스트리프트(부분 변경)와 연식 변경 모델이 나오면서 가격이 소폭 상승한 바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상품성을 개선하면 아무래도 원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모델 아니고서야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가격을 올려 받으려 할 것”이라며 “그렇지만 자동차 반도체 부품 사태 시기처럼 회사들이 ‘배짱 인상’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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