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독이 든 성배가 아닌 구원 없는 가시 면류관을 쓰는 것과 같다. 또 한 번 시즌 중 감독 중도교체 내홍을 겪게 된 롯데 자이언츠의 길은 무엇일까. 거인의 수장은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리일까.
롯데 자이언츠는 28일 “래리 서튼(Larry Sutton) 감독이 8월 27일 사직 kt 경기 후 건강상 사유로 감독직 사의를 표하여 구단은 숙고 끝에 서튼 감독의 뜻을 존중하고 수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잔여 시즌은 이종운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치러진다.
롯데의 ‘잔인한 감독사’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서튼 감독은 롯데의 17대 감독이었는데, 프로야구 42시즌 동안 평균 임기가 2.5년이었다는 뜻이다.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이 3시즌의 계약 기간을 채우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2010시즌 재계약하지 못하고 구단을 떠난 이후로 롯데 감독들은 잔여 임기를 제대로 채우기도 힘들었다.
안팎의 문제가 겹쳤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적 부진에 따른 경질 혹은 중도 사퇴 사례가 대부분이다. 양승호 전 감독은 2011시즌 롯데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끈 이후 이듬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과거 고려대학교 감독 시절의 학원 입시 비리가 불거져 경질됐다. 김시진 전 감독은 2013년 롯데 지휘봉을 잡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2년 만에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로이스터 감독의 공석에서 새로운 롯데의 수장이 된 이종운 감독대행은 2015년 롯데와 3년 계약을 했는데 첫해 8위에 그치자 한 시즌 만에 경질됐다. 이어 바톤을 받았던 조원우 전 롯데 감독 또한 2016년 8위에 그쳤지만, 2017년 정규시즌 3위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게 업셋을 당한 것이 뼈아팠다. 조원우 전 감독은 시즌 종료 후 3년 재계약을 했지만 2018년 7위에 그치자 경질됐다.
2019년 양상문 감독이 2004-2005년 이후 다시 롯데의 지휘봉을 잡고 사령탑으로 컴백했지만 결국 전반기 최하위까지 순위가 떨어지자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한 채로 경질됐다. 이후 허문회 전 감독이 시즌 종료 후 3년 계약을 했지만 2020시즌 7위에 그친 이후 2021시즌 5월 중순까지 최하위에 그친 끝에 경질됐다. 그렇게 허문회 전 감독이 물러난 이후 지휘봉을 잡은 것이 서튼 전 감독이었다.
서튼 감독의 행보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2021시즌 종료 후 서튼 감독은 1년 연장 계약 된 2023년까지의 임기를 보장 받았지만 2021시즌 7위, 2022시즌 8위로 2년 연속 PS 진출에 실패했다. 올 시즌 역시 시즌 초반 1위까지 올라서면서 ‘탑데’로 불릴 정도로 좋은 페이스를 보였지만 6월(0.360)과 7월(0.294) 승률이 4할에도 미치지 못한 끝에 순위가 점차 추락했다.
서튼 감독의 지휘 하에 롯데는 결국 앞서 4연승으로 바짝 흐름을 끌어올리는 등 8월 들어 다시 흐름을 찾아오는 듯 보였지만 최근 7연패를 당한 것이 뼈아팠다. 아직 시즌 포기를 말하긴 이른 시점이지만 5위 KIA와 5경기 차로 승차가 벌어진 상황. 4위 NC 다이노스가 3연승, 5위 KIA가 4연승 등으로 경쟁자들의 페이스도 좋다.
결국 27일 건강상 이유로 경기를 지휘하지 못했던 서튼 감독이 심야 시간 구단 수뇌부에 직접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롯데의 제17대 감독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역대 롯데의 사령탑들은 구단과 지역 출신의 ‘순혈주의’를 고집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로이스터 감독의 ‘노 피어’ 야구 이후 철학 없이 표류한다는 지적도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로이스터 감독의 기억을 떠올려 야심 차게 시도한 외국인 감독 체제의 부활도 다른 KBO리그 구단들처럼 실패로 돌아간 분위기다.
현재 롯데에는 벌써 후임 감독에 대한 설들이 돌고 있다. 다만 롯데 구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종운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완주하는 것에 구단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상황. 그 다음 체제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벌써 구체적인 인선이 정해진 것은 아닌 상황이다.
아직 시즌 포기를 말하기 이르고, 그래서도 안되는 시점에 후임 감독에 대한 논의가 더 크게 불거지는 건, 롯데의 2023 잔여 시즌 완주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롯데의 사령탑과 야구가 쉽게 논평될수록 구성원들의 부담은 더 커질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썼던 가시 면류관은 고행과 고통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성물이다. 왕관을 원하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지만 롯데 사령탑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차원을 넘어, 끊임없는 고행 속 언제 올지 모르는 구원을 이끄는 일과 같이 험난해 보인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one.2@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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