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이 있고 나서 학교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신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사회적으로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등교사 뿐만 아니라 전국 초·중·고 교사들은 매주 거리에서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내달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동조합(초교조) 위원장은 지난 24일 여의도 서울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서 아주경제와 만나 “교사들의 교육지도가 아동학대로 보일 수 있다는 걸 학습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개학 첫날 교권 침해 관련 지도를 하면 ‘아동학대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는 교사가 굉장히 많다”고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 현장을 전했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학교 현장 상황은.
“학생의 통제불가능한 행동으로 수업 방해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지만 교사는 손발이 묶였다. 교사의 교육활동·생활 지도를 ‘기분상해죄’로 간주하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를 비롯해 사소한 민원 등 모두 담임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민원 처리 시스템 등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문제 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들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교사가 어떤 민원까지 받고 있나.
“아침에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와 ‘우리 아이가 약을 먹어야 하니 오전 10시 30분에 가루약과 물약을 섞어 먹여주세요’라고 한다. 모든 학년에서 그런 전화는 흔하게 들어온다. 점심 이후엔 ‘우리 아이가 학원에 몇 시에 가는데 오늘 학교 언제 끝나요’라고 묻는다. 서울 강남 지역에만 한정된 민원이 아니다. 전국 모든 선생님이 이런 민원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3일 ‘교권회복·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대책은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범죄와 구분하고, 수사 개시 요건 강화 방안을 내놨다. 교육 현장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정당한 생활지도’와 아동학대의 구분점이 필요하다. 교육 활동의 특성을 인정받아 생활지도가 아동학대가 되지 않도록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방법·불응 시 제재 조치를 명문화해야 한다.”
-종합방안은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이 민원에 대응하는 게 핵심이다.
“학교 민원관리시스템을 만들어 달라 했더니, 교육공무직에 일을 ‘떠맡기는’ 모습이 됐다. 민원 대응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 학습지도와 성장에 대한 질 높은 피드백을 하기 위한 환경 조성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학부모들에게 교사가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일 돌려막기’는 학교 안에서 갈등만 부추길 것이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한 게시글을 봤다. 교육행정 직원이었는데 ‘우리한테 민원 처리하라고 하면 (학부모에게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라고 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학교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보호,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즉시 분리, 학교 민원관리시스템 구축이다. 교권침해를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교권침해를 생기부에 기재하기 시작하면, 학부모는 교사의 행동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것이다.
학교폭력을 생기부에 기재하기 시작하면서 ‘맞학폭’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예상 가능한 부분이다. 교권침해를 생기부에 기재하는 업무는 물론 맞고소 등으로 삭제하게 될 경우에도 해당 교사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 교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학부모를 두고 ‘몬스터 페어런츠(괴물 학부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한국도 일본처럼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우리가 일본 사례로 갈지, 선진국 교육 방식으로 갈지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굉장히 능력 있는 교사들이 스스로 사직을 하고 있다. 이런 교육 현장을 바로 잡지 않으면 일본처럼 굉장히 빠르게 교사가 기피 직종으로 바뀌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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