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관객 각각 50만·100만…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쳐
“예측할 수 있는 스토리·개봉 타이밍이 흥행 실패 요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올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4편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더 문’과 ‘비공식작전’이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극장가 퇴장을 앞두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두 작품의 흥행 실패 요인으로 개봉 타이밍과 새롭지 않은 스토리를 공통으로 꼽는다.
20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더 문’의 누적 관객 수는 50만명을 겨우 넘은 수준이다. 평일 하루 관객 수는 1천명대까지 떨어졌다.
달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제작비로 약 280억원이 들어갔다.
단순 극장 매출로만 환산하면 손익분기점은 640만명가량인데 누적 관객 수가 10분의 1에도 못 미친 것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이른바 ‘쌍천만’ 흥행 신화를 쓴 김용화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번 흥행 참패는 더 뼈아프다.
‘비공식작전’의 경우 ‘더 문’보다는 다소 나은 상황이지만 마찬가지로 쓴맛을 보는 중이다.
누적 관객 수가 100만명을 겨우 넘어 당초 목표인 600만 관객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 영화는 모로코와 이탈리아 현지 촬영분이 70%에 달해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비공식작전’ 역시 흥행에 일가견이 있는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와 주지훈이 주연해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여름 극장가의 승자는 최근 손익분기점 400만명을 돌파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와 머지않아 손익분기점 380만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가닥이 잡힌 분위기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개봉 시점이 흥행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두 영화는 이달 2일 동시에 개봉했다. ‘밀수'(7월 26일)와 ‘콘크리트 유토피아'(8월 9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개봉’이란 말이 나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두 작품이 한날 나오면서 결국 ‘관객 나눠 먹기’가 된 게 두 편 다 실패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라면서 “각각 다른 날 개봉했다면 최소한 관객이 분산되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대작 4편의 첫 타자인 ‘밀수’가 호평을 받으면서 먼저 치고 나가 관객을 쓸었다”며 “바로 다음 주 개봉한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밀수’ 2주 뒤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반사 이익을 얻어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작품 자체에서도 참패의 요인을 찾을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두 작품의 장르와 매력 요소는 다르지만, 스토리가 쉽게 예측되고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공통점으로 꼽힌다.
‘더 문’은 사고로 혼자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선우(도경수 분)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의 분투를 그렸다.
고립, 구출 시도, 탈출로 이어지는 서사가 단순한 데다 할리우드 영화 ‘마션’, ‘그래비티’ 등에서 접했던 이야기라 기시감이 든다는 평이 많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더 문’의 시각특수효과(VFX)는 뛰어나지만, 할리우드 SF 작품보다 크게 메리트는 없다. 그렇다면 스토리라도 재밌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는 거의 부재하다시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른바 ‘아버지 서사’와 애국 코드, 신파 등 한국 영화에서 많이 봐온 뻔한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나온다”며 “김용화 감독의 장기인 맛깔스러운 유머도 없고 분위기 역시 내내 심각하고 진지하게 가져갔다”고 지적했다.
‘비공식작전’의 경우 1980년대 발생한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중동 지역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 외교관의 구출 작전을 그렸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올해 초 극장에 걸린 임순례 감독의 ‘교섭’과 비슷해 보인다는 평이 나왔다. ‘교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우리 국민들을 구하려는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납치와 구출이 주요 스토리라는 점, 두 남자 주인공이 짝을 이룬 버디물이라는 점, 주 무대가 해외라는 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등 ‘비공식작전’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일각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2021)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도 나왔다. ‘모가디슈’는 내전이 발발한 소말리아에 고립된 남북 외교관들의 탈출기를 그린 영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연출 방식이나 세부 등장인물, 스토리 등 다른 게 많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비공식작전’이 ‘교섭’이나 ‘모가디슈’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면서 “‘어차피 다 아는 영화’라는 생각 때문에 관객의 선택을 덜 받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비공식작전’의 실제 관람객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전에 관객을 일단 극장으로 불러들여야 하는데 그럴 만한 매력이 부족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비공식작전’은 실 관람객만을 대상으로 산정하는 CGV 골든에그 지수에서 ‘밀수'(93%), ‘콘크리트 유토피아'(89%), ‘더 문'(86%)보다 높은 95%를 기록 중이다.
결국 신선하게 다가간 작품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작품은 외면당했다는 얘기다.
윤성은 평론가는 “‘밀수’는 처음 보는 해녀들의 액션이 있었고, 한국 영화 특유의 단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면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한국 작품에서 보기 어려웠던 포스트 아포칼립스(재난 이후) 영화이고 우리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아파트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진 것”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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