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대민 지원, 징병제의 또다른 쓴맛 ?…기상이변 더 늘어날텐데
수해 실종자 수색작업 중 숨진 고(故) 채모 해병 상병의 사건을 계기로 일각에서 군 대민지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기상이변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군의 대민지원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민지원 현장의 다양한 환경에 따라 유연성과 원칙을 겸비한 작전 개념이 세워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지난 7월9일부터 7월27일까지 집중호우와 관련, 군이 대민지원에 투입한 인원은 6346명, 장비 396대에 달했다. 실종자 3명을 찾기 위해 채 상병과 함께 경북 예천에 투입된 병력은 50명이었다.
군이 대민지원활동에 병력을 투입하는 근거 법령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39조로 재난 발생 시 동원 가능한 장비와 인력 등이 부족한 경우 정부나 지자체장이 국방부 장관에게 군부대 지원요청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재난에는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한파, 낙뢰, 가뭄, 폭염 등이 망라돼 있다.
(서울=뉴스1) = 특전사 13특수임무여단의 재난신속대응부대 장병들이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일대에서 폭우로 인해 고립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색·구조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육군 제공) 2023.7.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각에선 대민지원이 국제노동기구(ILO) 29호 협약(강제노동 금지)과 상충할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허리케인 피해 지역 복구에 동원돼 왔던 미군의 사례 등을 근거로 군의 대민지원은 재난안전법상 근거가 있는 행위일 뿐 아니라 보편적 현상이며 숭고한 병역의 일환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다만 징병제 국가인 한국의 특성상 전투와 무관한 온갖 현장에 장병들이 비자발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채 상병 사고를 계기로 50여만명 규모인 군 장병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대민지원 관련 시스템을 점검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해병대가 하천변 실종자 수색 중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등을 담은 구체적 매뉴얼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민간 인권단체 군인권센터는 채 상병 소속 중대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동료 병사들의 제보 등을 근거로 해병 수뇌부가 구명조끼 없이 채 상병 등 부대원들이 작전에 투입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무리한 수색 지시를 내렸음을 드러내는 정황을 폭로했다. 이와 관련, 해병대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노양규 성우회 안보전략연구원장은 “지휘관들의 판단을 잘 존중해 주고 현장에서 미처 챙기지 못할 것들은 상급부대에서 잘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반드시 전쟁에 대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평상시에 국민의 삶을 지원해 주는 것도 군의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면 지원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수량’에 흔들리는 北천수답…’불량국가’의 지속가능발전?
기상이변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북한 당국도 기후 문제를 체제 결속을 위한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각종 제재에도 불법 도발을 일삼는 ‘불량 국가’이면서도 온실가스 감축 등을 담은 국제사회의 의제인 ‘SDGs(지속 가능 발전 목표)’에는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 지구적인 이슈로 부상한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남북 협력의 단초”라는 분석이 학계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17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북한 관영매체와 통일부 분석을 종합한 결과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과 북한 대외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 관영방송 조선중앙TV에서 ‘엘니뇨’ 단어를 언급한 횟수는 올들어 100여회에 달한다. 엘니뇨란 남아메리카 페루 및 에콰도르의 서부 열대 해상에서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태평양 일대 강수량을 평상시와 비교해 들쑥날쑥하게 만드는 등 기후 변화를 유발하는 이상현상이다. 이는 지난해(1회)와 2021년(1회)과 비교하면 엘니뇨 언급량이 폭증한 것으로, 농작물 피해 등에 대한 북한 당국의 우려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사진=북한 노동신문 캡처 |
7월5일 노동신문은 ‘대동강큰물지휘조’의 대동강 수역 저수지 수위 측정 등 활동을 소개하며” 엘니뇨현상에 의해 수시로 변화되는 기상수문자료들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장악하고 적시적인 대책을 세울수 있도록 대동강큰물통합지휘체계를 보다 완비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장마철에 큰물피해를 입는것은 주로 강물이 넘어나기때문”이라는 훈시도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온실가스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달 2일 “과학자들은 일부 지역에서의 기온상승은 엘니뇨현상에도 기인되지만 기본 원인은 늘어나는 온실가스량에 있다고 하면서 온실가스방출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열파가 더 자주 들이닥칠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강원도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을 돌아보며 “태풍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가시기 위한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비서가 “조선인민군 공군부대의 직승기와 경수송기들을 동원하도록 조치하고 농약살포사업을 몸소 조직지휘”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같은 지도에 따라 태풍 피해가 완전히 복구됐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은 2015년 9월 유엔의 에너지·식량·금융·기후변화 의제인 ‘포스트 2015 개발의제’ 동참을 공식화했고 2021년 7월에는 SDGs 이행에 관한 VNR(자발적 국가별 검토)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북한은 자유권, 아동폭력, 무기거래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왔지만 VRN에서 “2020년 최종에너지 소비 총량 중 신재생에너지 분담률은 10.8%”였다며 온실가스 감축에는 관심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북한 측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푸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고의적 적대행위”라며 맹비난했음에도 기후 변화와 관련한 국제사회 행보에는 참여를 확대할 듯한 신호를 보내는 의외의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북한의 농경이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저수지나 지하수 펌프 등 관개 시설 없이 오로지 빗물에 의존해 물을 대는 논인 천수답(天水畓)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다. 북한은 식량난에 따라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어 비핵화를 전제로 대북 제재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 신호를 언제 보낼지 주목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천수답은 그 해의 기후 변화 기상 상황에 굉장히 큰 영향 영향을 받고 기후 변화에 대해서 민감할 수 밖에 없다”며 “그나마 국제사회에 반응하고 있는 몇 안되는 주제 중에 하나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인데 북한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이 없이는 어렵다는 게 분명하다는 점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주제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태풍처럼 폭염에 이름 붙이자”…세계가 바뀐 기후에 대응하는 법
17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초토화된 라하이나 지역의 모습. 이번 산불로 최소 111명이 숨졌다. /AFPBBNews=뉴스1 |
지구촌이 폭염과 산불, 폭우 등 전례 없는 기상 이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기상 이변이 대규모 참사 및 재난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방재 대책만으론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단적 기후가 뉴노멀(새로운 일상)로 자리 잡은 가운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전 세계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끊이지 않는 폭염·폭우·산불…빈도 늘고 강도 세지고
기후 재난은 이제 전 세계의 일상이 됐다. 1년 내내 화창한 날씨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는 올 초 폭우와 폭설로 최악의 새해를 맞이했다. 17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다. 유럽은 봄부터 이른 폭염에 시달렸다. 수년 동안 심각한 가뭄이 이어진 스페인은 4월부터 일부 지역 기온이 섭씨 38.8도(℃)까지 치솟으며 평년 기온을 10℃ 이상 웃돌았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폭염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지난달 최고 기온이 41.8℃로 관측돼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남부 시칠리아 기온은 47.4℃까지 뛰었다. 반면 밀라노 등 북부엔 강력한 폭풍우와 우박이 몰아쳐 대조를 이뤘다. 인도 프라야그라지 지역의 최고 기온도 45℃에 육박했다. 미국에서도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주가 강한 고기압이 고온을 가두는 ‘열돔 현상’으로 40℃ 넘는 폭염에 시달렸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스페인 일부 지역 기온이 45℃에 육박한 가운데 발렌시아 남부 사티바 분수대에서 방문객들이 열기를 식히고 있다./AFPBBNews=뉴스1 |
폭우도 세계 곳곳을 강타했다. 지난달 미국 북동부 버몬트주에선 2개월 동안 내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중국 수도 베이징과 인근 허베이성 등엔 140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1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됐다. 인도에선 몬순 기간 45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내리면서 600명 넘게 사망했다.
산불도 극성이다. 6월 북미 전역에 최악의 대기오염을 초래한 캐나다 산불은 두 달 넘게 이어지며 남한 면적의 약 90%를 태웠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대형 산불이 번졌고 ‘지상낙원’ 하와이에서도 일주일 넘게 산불이 계속돼 마우이섬이 잿더미로 변하고 1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불길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혹은 도망치던 중 자동차나 길가에서 화마에 휩싸여 사망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됐다.
◇산불 끄기에 앞서 나무들이 어떤지 신경 썼더라면
자연재해를 인간이 완벽히 예측해 막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각국의 대책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회복을 돕는 데 맞춰져 있다.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 미리 경보를 발령하고 행동 절차를 안내하며, 재난 후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피해 지역을 신속히 복구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100여년 만에 최악의 산불 참사가 된 하와이 산불이 예다. 가디언에 따르면 하와이에선 2021년부터 불에 잘 타는 외래종 초목 때문에 산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묵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리 초목 관리를 했더라면 화염의 강도를 낮춰 불길이 번지는 속도도 늦출 수 있었으리란 비판이 많다. 이번 산불이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캐나다 역시 예산 삭감으로 인한 산불 예방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 산불 발생 지역인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경우 2021년 산불 피해로 인해 8억캐나다달러(7900억원)를 썼음에도 지난해 산불 예방 예산은 320만캐나다달러밖에 편성되지 않았다. 마이크 플래너건 톰슨리버스대학 산불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불을 끄는 게 산불의 해결책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산불 예방을 위해 화재에 취약한 정도를 평가하는 식생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에 따른 지도화 작업을 마쳤다. 장기적으로는 가연성 높은 초목으로 이뤄진 숲은 구성을 다양화하고 단기적으로는 불이 나더라도 넓은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방화대나 연못 같은 완충 지대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캐나다 산불로 뿌예진 하늘을 관광객들이 바라보고 있다./AFPBBNews=뉴스1 |
◇’폭우 막아라’ 中 해면도시 프로젝트…강도 높이는 폭우엔 ‘역부족’
중국은 계속된 도시 침수로 폭우 피해 예방을 위해 ‘해면(스펀지)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한 케이스다. 2013년 865억위안(15조8500억원)을 투자해 16개 도시에 시범 공사를 추진했고 2030년 해면도시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단 목표를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투수성 아스팔트 사용, 운하와 연못 건설, 습지 복원 등에 초점에 맞췄다. 자연 기반 방식을 활용해 배수와 저장 능력을 높여 주요 도시의 폭우 피해 회복력을 높이고 빗물을 더 잘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도시 환경 개선 효과도 기대됐다.
그러나 진전은 더뎠고 여전히 많은 도시는 폭우에 취약하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홍수 관련 재해로 142명이 실종됐고 157억8000만위안의 직접적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로이터는 해면도시 대책이 전면 시행됐더라도 재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허난성 정저우시는 2016년부터 5년 동안 약 600억위안을 들여 해면도시 프로젝트에 쏟아부었지만 2021년 역대급 강우량에 침수를 피하지 못했다. 해면도시는 하루 강우량 200㎜까지 버틸 수 있게 설계됐지만 2021년 7월 정저우시에선 한 시간 만에 200㎜ 비가 쏟아졌다.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폭우로 망가진 다리의 모습./AFPBBNews=뉴스1 |
◇태풍처럼 폭염에 등급 이름 붙이기도…”인프라 전면 재점검 필요”
해외에선 폭우나 산불처럼 피해가 가시화되지 않아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폭염 예방을 위해 폭염에 등급을 매기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폭염에 태풍처럼 이름과 등급을 붙이면 그 위험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페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세비야는 지난해부터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폭염을 1~3등급으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 서부 도시들도 비슷한 작업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국가가 일상화된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 환경에 맞는 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네 반데카스틸레 유럽환경청(EEA) 연구원은 NYT를 통해 “각국 정부가 전체 행정 단위를 동원해야 한다”며 “건물부터 교통, 보건, 농업, 생산성까지 전 분야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기후연구소의 마틴 랄프 박사는 “기후 예측 모델은 재해가 더 빈번해질 것으로 분석한다”면서 “결국 극단적 기후로 인간이 입는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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