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전기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하이브리드 차량이 여전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를 ‘브리지’로 내세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어서다.
1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올 2분기(4∼6월)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픽업 트럭인) ‘F-150’ 하이브리드 모델의 인기에 놀랐다”며 “F-150 고객의 10% 이상이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 비율이 증가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더 많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드의 이 같은 선언은 2분기에만 전기차 부문에서 10억8000만 달러(약 1조4000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과 연관이 있다. 아직 전기차 시장이 궤도에 오르지 않아 수익이 나지 않자 이를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를 통해 메꾸겠다는 것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부분 전기차 부문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아직은 수익이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연기관차가 유럽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2035년까지 아직 10여 년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는 가솔린·디젤 차량과 전기차의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버텨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프랑스 르노와 중국 지리자동차의 경우에는 50 대 50 지분으로 최대 70억 유로(약 10조 원)를 투입해 하이브리드 및 가솔린 엔진 개발·생산을 위한 합작 투자사를 설립하기로 지난달 발표했다. 르노코리아가 지리자동차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내년 3분기(7∼9월) 하이브리드 신차 출시를 계획하며 반전을 꾀하는 것도 글로벌 본사의 전략과 같은 맥락이다.
‘하이브리드 명가’인 일본 도요타는 올 6월 미국 미시간의 북미 연구센터에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를 실험하기 위한 설비에 5000만 달러(약 660억 원) 투자를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미쓰비시는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개발에 2030년까지 1조4000억 엔(약 12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달 출시하는 5세대 싼타페 하이브리드에 자체 설계한 배터리를 처음 장착하며 공을 들였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어차피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모터와 고전압 장치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전기차 기술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전기차 시대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여전히 하이브리드 수요가 많다. 지난해 상반기(1∼6월) 국내 내수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은 12만9509대 팔렸는데 올 상반기(17만6699대)에는 판매량이 5만 대 가까이 늘어났다. 친환경 차 중 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1.8%에서 올해 66.8%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도 6만7848대에서 7만8977대로 늘었지만 점유율은 오히려 32.4%에서 29.9%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을 빨리 경험하려는 ‘얼리 어답터’들은 대부분 이미 전기차를 구매했고, 일반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 화재 위험,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전기차 구매를 여전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약점을 대폭 개선한 전기차가 쏟아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하이브리드의 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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