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콘크리트’ 웃고…’비공식작전’·’더 문’은 울고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올해 여름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한국 영화 4편이 모두 개봉하면서 흥행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와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순항하는 분위기이지만,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과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의 흥행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편당 제작비가 200억원이 넘는 대작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지난해처럼 4편 중 2편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극장가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대작 4편 가운데 가장 먼저 웃은 건 지난달 26일 개봉한 ‘밀수’다.
13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419만4천여명을 기록했다. 17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밀수’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400만명으로, 일단 ‘남는 장사’엔 성공한 셈이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가 주연한 ‘밀수’의 흥행은 탄탄한 이야기에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을 가미해 오락적 요소를 극대화한 데 있다. 무더운 여름에 극장을 찾는 관객의 요구를 충족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는 평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바다와 시원한 수중 액션은 잠시라도 무더위를 잊게 해줄 만하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7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어촌의 풍광과 ‘연안부두’를 포함한 옛 유행가는 ‘레트로'(복고) 감성도 자극한다.
가장 늦게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출발이 좋다.
이 영화는 지난 9일 개봉과 함께 ‘밀수’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고, 개봉 나흘째인 전날 100만명을 돌파했다.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는 111만8천여명이다. 제작비가 220억원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손익분기점은 380만명이다. ‘밀수’보다 제작비가 많음에도 손익분기점이 낮은 건 해외 판매 수익 등이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이 주연한 이 영화의 강점으로는 이병헌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꼽힌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의 주민 영탁을 연기한 그는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 극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비공식작전’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보다 한 주 일찍 개봉했음에도 누적 관객 수가 93만3천여명에 그쳐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하정우와 주지훈 주연의 버디 액션물인 이 영화는 자동차 추격을 포함한 액션의 속도감과 사실감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 관람객의 평가를 반영한 CGV 골든에그 지수도 95%로 대작 4편 중 가장 높다.
그런데도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한국인들의 탈출기라는 소재 자체가 ‘모가디슈'(2021)나 ‘교섭'(2023) 등과 비슷해 새로운 인상을 못 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더 문’의 성적은 더 저조하다. 지난 2일 ‘비공식작전’과 동시에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46만5천여명에 머무르고 있다.
우주와 달의 스펙터클을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사실감으로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달을 배경으로 펼쳐내는 액션도 박진감이 있지만, 신파로 느껴질 수 있는 요소 등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있다.
‘더 문’의 손익분기점은 640만명이며, ‘비공식작전’도 600만명을 넘기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그만큼 제작비가 많이 투입돼서다. 반전을 못 이룰 경우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 들어 극장가에서 부진을 거듭해온 한국 영화가 ‘범죄도시 3’의 천만 영화 등극으로 자존심을 지킨 데 이어 여름 대작 4편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밀수’가 선전한 상황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흥행한다면 이번 여름 한국 영화는 일단 선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 이한 감독의 ‘달짝지근해: 7510’,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가 동시에 개봉하면서 극장가 구도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이번 여름에도 장르적 개성이 뚜렷한 영화가 흥행하는 것 같다”며 “한국 영화가 얼마나 선전했는지는 이달 15일이 지나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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