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전기차 시장에 ‘표준 전쟁’이 치열하다. 지난 100여년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 왔던 완성차 업체들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긴장하고 있다. 기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다양한 전략과 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충전기에 연결하는 단자 모양을 놓고 구글을 중심으로 한 안드로이드 연합군과 독자 노선을 선택한 애플이 대립하고 있다.
전기차도 이와 비슷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는 1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데다가 탑승자 안전 문제로 직결되고, 나아가 충전 정보를 포함한 생태계 주도권이 걸려 있어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기차 충전 규격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 가장 보편화한 방식은 ‘콤보’라고 불리는 CCS(합동충전시스템)이다. 고출력 급속 충전에 유리해 유럽을 중심으로 보급됐다. 폭스바겐·BMW·다임러·현대차·GM·포드 등 전통적 완성차 기업이 채택했다. 일본과 중국 업체는 각각 차데모와 GB/T 방식을 사용하는데 충전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다.
테슬라는 북미에서 NACS(북미충전표준)라는 독자 규격을 고수하고 있다. 콤보 방식에 비해 충전 커넥터가 가벼워 사용하기 편하다는 게 장점이다.
테슬라는 중국 등 생산체제를 갖춘 시장엔 해당 국가 충전 방식으로 차량을 생산하거나, 전용 어댑터를 별도로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최근 GM·포드에 이어 볼보·폴스타·다임러·닛산 등 주요 기업들이 ‘테슬라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며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테슬라의 힘은 자체 급속충전소인 ‘슈퍼차저’에서 나온다. 발빠른 인프라 투자를 통해 미국 급속충전기 시장 점유율 60~70%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간 테슬라는 자사 차량에만 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전기차 확대와 미국 정부 보조금 정책과 맞물려 다른 회사 차량에게도 이를 개방하는 추세다. 인프라 투자에 뒤쳐진 전통 완성차 기업들이 이런 트렌드에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충전 시장이 요동치면서 국내 기업인 현대차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전용 급속충전소 ‘E-PIT’를 주도적으로 구축하는 등 테슬라와 닮은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럽에선 폭스바겐·BMW·다임러·포드와 함께 전략적으로 투자한 충전업체 ‘아이오니티’를 통해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다. 투자 방식은 다르지만 CCS 방식에 ‘올인’한 상황에서 테슬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이 자랑하는 ‘18분 초급속 충전’은 현재 NACS 방식인 슈퍼차저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 아이오닉5 등 현대차 전용전기차는 800V 전압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탑재됐다.
슈퍼차저는 400V급에 불과하기에 전용 충전소에 비해 충전 속도가 느리다. 한 해외 매체에서 아이오닉5를 슈퍼차저를 통해 충전해봤더니 72분 걸렸다는 실험 결과를 보도했다. 기존 보다 3배나 더 오랜 걸린 셈이다.
향후 성능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술 구현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이 경우에도 테슬라 협조가 필수적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NASC 도입과 관련해 “고객 관점에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다만 시기, 상황에 따라 늬앙스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는 있다. 장 사장은 지난달 20일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는 ‘슈퍼차저를 통한 충전은 속도에 한계가 있다’며 고객 불편 측면을 지적하며 이야기했다.
김흥수 현대차 글로벌전략담당 부사장도 “충전은 데이터, 부가서비스를 포함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라며 “테슬라에 종속되는 모습이 전기차로 가는 업체로서 유효한가 의문”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장 사장은 지난 13일 영국에서 열린 아이오닉5N 공개 행사에서는 충전요금 할인 여부 등 서비스 측면을 언급하며 “고객이 원하는 걸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테슬라 충전 연합 가입과 관련해 유보적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로 바뀐 것으로 판단된다. 이래저래 현대차 시름은 깊어만 간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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