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민원처리반 돼버려”…교권침해 현실 고발하며 대책마련 촉구
동료교사 토로에 곳곳 눈물…32도 무더위 속 예상인원 갑절 넘게 모여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기자 = 토요일인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검은 옷과 마스크 차림의 교사와 교대생 5천명이 모였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2년차 교사 A씨가 목숨을 끊은 사건에 분노해 각지의 전·현직 교사와 예비교사가 집결한 것이다.
교사들은 차례로 연단에 올라 A씨를 추모하는 한편 교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한 2년차 교사는 “오늘 자발적으로 생존권이라는 중요한 주제로 한 자리에 모였다”며 “교사 커뮤니티에는 악성 학부모 민원에 대한 글이 넘쳐난다. 언젠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퇴근 시간 이후 학부모에게 전화가 와도 상담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며 “문제의 본질은 25명의 아이와 그 학부모를 교사 1명이 담당해야 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연단에 오른 또 다른 교사는 “돌아가신 분의 고통을 저 역시 알 것 같아서 서이초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며 “필터 없는 민원이 바로 교사에게 꽂히는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민원 처리반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고 털어놨다.
자신을 9년차 교사라고 밝힌 참가자는 “나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던 게 지금과 같은 일을 일으킨 것 같아 부채감을 느낀다”며 “학부모 민원에 더해 교실에서도 학생들에게 아무 말 할 수 없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의 초등학교 교사는 “교권침해 사례가 언론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제도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며 “학생 인권과 학부모 인권을 보호하려는 만큼 교권 역시 보호해달라”고 호소했다.
연단에 오른 이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눈물을 닦는 참가자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참가자들은 다같이 ‘진상규명 촉구한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손에는 ‘교사 생존권 보장’이라는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위기가 교권 차원이 아닌 생존권의 차원이라는 호소인 셈이다.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르고 비까지 내리는 날씨였지만 사전 조사에서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약 2천명의 갑절이 넘는 5천명의 참가자(주최측 추산)가 모였다.
보신각 일대가 꽉 차 도로 건너편 인도까지 인파가 몰리자 경찰은 보신각 앞 도로 2개 차로를 더 내줬다.
이날 집회는 이번 사건으로 구성된 자발적 교사 모임인 공교육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조직했다.
대책위는 “이번 일이 분노와 슬픔이라는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란다”며 “연대를 통해 교사들의 권리를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또 “현장의 교사들은 학부모에 의한 무차별적 폭언 등 생명과 직결되는 위협에 노출돼 있다”며 “교사 생존권 보장에 대한 교육부의 대처방안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ys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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