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A씨는 2021년 7월 경북 구미의 마사지숍을 찾았다가 40대 남성 마사지사 B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A씨는 B씨를 고소했는데 사건 약 3개월 뒤인 그 해 10월 A씨에게 엉뚱한 소식이 들려왔다. 오히려 본인이 성범죄 가해자로 고소됐다는 것이다. B씨는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A씨를 고소했다.
A씨는 적극적으로 항변했고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B씨가 A씨를 무고했다는 혐의는 경찰의 불송치 사건으로 남았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무고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권이 없어지면서 검찰의 사건 검토를 거치지 못한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무고 인지로 접수 사건은 2020년 705건에서 2021년 201건으로 급감했다.
보통 무고 수사는 사건 성격상 경찰보다는 사건을 최종 처분하는 검찰에서 주로 했다. 고소당한 사람이 무혐의라는 것을 먼저 확인해야 무고 여부를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사 개시권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무고 사건 수사도 줄어든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각종 범죄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지 못하게 됐다”며 “‘검찰은 최대한 인지 수사를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무고 인지 업무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 무고 사건은 2년여가 지나서야 드러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검찰청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검찰이 사법질서 방해범죄 수사를 직접 개시할 수 있게 하면서 무고 사건 인지 수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올 5~6월에 걸쳐 2021년 초부터 이듬해 8월까지 관할 지역 경찰의 불송치 사건 중 무고로 의심되는 사건을 재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 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음성파일 등 증거를 바탕으로 B씨를 무고·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을 맡은 이준명 검사는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오히려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말을 꺼냈는데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면서 A씨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무고 사범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또 다른 무고 사건 피의자도 재판에 넘겼다. 20대 여성 C씨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해온 남성 D씨으로부터 강간당했다며 2021년 1월 허위 고소한 사건이다. C씨는 성매매를 하던 중 D씨를 알게 됐고 주거지 보증금 등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성관계를 했다.
그러다 둘의 관계가 틀어져 D씨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자 C씨는 채무 면제와 합의금을 받기 위해 고소를 했다고 한다. 검찰 조사에서 성관계 상황을 담은 음성파일이 확인되면서 C씨는 결국 무고죄로 불구속 기소됐다. D씨는 성범죄자가 아닌데도 변호사를 선임해가며 수사를 받아야 했던 현실 때문에 심리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검사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무고 수사 개시권이 없어 적절한 수사 시기를 놓친 점이 아쉬웠다”며 “‘진짜 성범죄’ 고소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무고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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