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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시위 도중 최루탄 맞아 실명 50대… 37년 만에 국가배상책임 인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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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생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맞고 한쪽 눈을 실명한 50대가 37년 만에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2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김진수)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신헌기 판사는 정모씨(59)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정씨에게 1억4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정씨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상 손해배상액을 1억3000만원으로,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액을 1000만원으로 각각 인정하고 그에 대한 지연이자까지 약 3억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부가 항소기간 내 항소하지 않아 지난 13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등 민주화 운동이 거셌던 1986년 11월 부산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정씨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진압에 나선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정씨는 보상을 받기 위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6개월 후 부산시 경찰국(현 부산지방경찰청)은 “최루탄에 의해 부상당한 점은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 문제는 경찰관의 소관이 아니므로 내사 종결했음을 알려드린다”고 통보했다. 직선제 개헌과 선거로 정권이 바뀐 1988년 7월 다시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추가 조사할 것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씨는 실명 이후 지금까지 20여곳의 직장을 옮겨다니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등 취업과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어렵사리 잡은 직장에서는 ‘한쪽 시력만으로는 안전한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쫓겨나기도 했다. 정씨의 아버지는 사고 발생 34년 만인 2020년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냈다.

2022년 7월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는 정씨의 좌안 부상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 최루탄에 의해 입은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부상 당시 이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 경찰 내사 결과 최루탄에 의한 부상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음에도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정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또 “최루탄 발사로 인한 정씨의 부상 치료비, 치료기간, 후유증으로 발생한 실명 정도를 고려해 배상 등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권고했다.

정씨는 이 같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 결정을 토대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지난해 11월 2억44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정부 측은 정씨의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이미 만료돼 권리가 소멸됐다고 주정했다. 민법과 국가재정법 등에 따라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인데 정씨가 1987년 5월 29일 경찰로부터 민원사건 처리 결과 통지 및 안내문을 받은 때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봐야 하고, 사고가 발생한지도 이미 5년이 훨씬 지났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재판부는 2018년 헌법재판소가 과거사정리법의 진실규명 대상 사건에 민법상 소멸시효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결정을 인용했다. 당시 헌재는 “민법상 소멸시효 기간을 과거사정리법에 규정된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해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하므로 위 위헌 결정의 효력은 이 사건에도 미친다고 봐야 한다”라며 “따라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상 객관적 기산점을 기준으로 한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 기산점을 전제로 국가에 대한 금전 급부를 목저긍로 하는 권리의 소멸시효기간을 5년으로 규정한 국가재정법 또는 예산회계법 조항들 역시 그 적용이 배제되며 민법 제766조 1항이 정한 주관적 기산점과 이를 기초로 한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정씨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언제로 봐야할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정씨가 피해보상제도 등을 안내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민법 제766조 1항의 단기소멸시효와 관련해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진실규명결정일이 아닌 그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날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정씨가 1987년 5월 피해보상제도 안내문과 결과를 경찰국으로부터 통지받았다고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손해를 배상받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했던 만큼 사실상 법률상 장애가 존재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전혀 실익이 없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손해를 알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정씨의 재산상 손해가 1억9400여만원에 달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씨가 사고 발생 경위에 관해 처음부터 일관된 주장을 하지 못한 점과 그로 인해 상당한 기간 손해배상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재산상 손해액을 1억3000만원으로 제한했다.

정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강청현 변호사는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가 뒤늦게나마 국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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