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세계는 미국, 유럽에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시장 진출이 화두였다. 2001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처음 언급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는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곳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발 빠르게 이들 나라에 투자했다. 1998년 인도, 2002년 중국, 2011년 러시아, 2012년 브라질에 차례로 공장을 세우며 글로벌화의 핵심 거점으로 삼았다. 진출 10∼20년이 지난 이들 나라에서 현대차그룹의 위상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중국에서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도매 기준 183만 대를 판매했다. 현대차는 현지 공장을 5개까지 늘렸고, 기아도 3개의 생산공장을 가동했다.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합산점유율은 8.1%로 올랐다. 하지만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내 반한 감정이 표출되면서 중국 내 판매량이 곤두박질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1%대(1.9%)로 추락했고, 그 사이 현대차와 기아의 공장도 1곳씩 줄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2021년까지 기아는 2위, 현대차는 3위로 나란히 선두권을 달렸다. 그해 합산 판매량은 37만2000여 대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연간 생산 30만 대 규모의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아예 멈춰 섰고, 기아 수출도 거의 중단됐다. 현대차 공장의 경우 가동 재개가 계속 미뤄지면서 공장 매각 및 철수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도에서의 판매량 증가는 중국과 러시아에서의 감소분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은희 KOTRA 뉴델리 무역관 차장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 때문에 중국에 있는 공장 사정이 좋지 않아 공장을 옮기는 것을 고려하는 기업인들이 인도 무역관을 찾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공장은 인도만큼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16만 대 수준이었던 판매량은 지난해 20만 대로 늘어났다. 지난해 가동률은 거의 100%에 가까웠다. 다만 올해 1분기(1∼3월)는 현지 전략 모델인 소형 해치백 HB20의 수요가 줄면서 가동률이 81.4%로 떨어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10, 20년 전만 하더라도 가장 각광받던 시장이란 공통점이 있었는데 정치적 문제로 핵심 거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 안타깝다”며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세계 3위를 유지하거나 더 높이 올라가려 한다면 브릭스를 포함한 신흥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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