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자막·방백 등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상황 설명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어머님 사랑해요.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재벌가 단씨 집안의 최고 어른 백도이(최명길)의 칠순날, 며느리 장세미(윤해영)는 가족들이 다 모여앉은 자리에서 “더는 못 숨기겠다”며 시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늘 차갑고 도도한 태도로 백도이와 사사건건 어긋나며 부딪히던 장세미의 폭탄 발언에 가족들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이때, 백도이의 셋째 아들 단치정(지영산)의 얼굴 옆으로 큼지막한 자막이 뜬다. “이 상황 뭥미..?!”
16일 방송가에 따르면 극 중 인물이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방송 중인 임성한(필명 피비) 작가의 TV조선 드라마 ‘아씨두리안’의 경우에는 자막을 활용했다.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며느리를 보며 혹시 아들과 이혼을 발표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백도이의 얼굴 옆에는 “어째 우리 아들”이라는 자막이, 소복 차림에 긴 머리를 늘어트린 두리안(박주미)과 김소저(이다연)를 보고 반한 단치정 옆에는 “하늘에서 선녀 둘이 사라진 줄 알겠네”라는 자막이 뜬다.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화면 구성에 “참신하다”, “낯설어서 볼 때마다 웃기다”, “역시 임성한 작가답다” 등의 시청 평이 나온다.
tvN 드라마 ‘이로운 사기’도 극 중 방백(등장인물이 말을 하지만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된 대사)을 삽입해 화제가 됐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공감 불능 천재 사기꾼 이로움(천우희 분)은 여러 차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며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다.
거액의 돈을 따내기 위해 찾은 카지노에서는 “블랙잭은 처음 라운드의 내용이 다음 라운드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이야”라며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고, 컨설턴트를 사칭해 병원 안내 직원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먼저는 낮은 직급을 건드려. 상급자와 역학관계를 이용할 수 있거든”이라며 사기 수법을 풀어낸다.
방백은 주로 연극에서 쓰이는 기법으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흔하지 않다.
천우희는 작품 홍보를 위해 진행한 한 유튜브 채널 속 인터뷰에서 “‘이로운 사기’에서는 방백을 많이 해야 했는데 카메라를 보고 연기하는 게 처음이었다”며 “낯설어서 엔지(NG)를 20번 정도는 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방백 장면이 미치겠을 정도로 (연기가) 안 됐다”는 배우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신선한 연출과 연기에 대한 호평이 나온다.
“천우희가 언제 화면을 보며 얘기할지 궁금해 보게 된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소화한 것 같다”, “중간중간 삽입된 방백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봤다” 등의 반응이다.
‘이런 시도들의 배경에는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이 있다. ‘영화는 눈으로, 드라마는 귀로 본다’는 말이 있듯이 드라마는 여러 다양한 공간과 상황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주의를 잡아끌고, 상황을 쉽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극한직업'(2019)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후 JTBC ‘나쁜엄마’로 첫 드라마 시나리오에 도전한 배세영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드라마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한 줄 한 줄 풀어서 자세하고 반복적으로 말해 주어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 시청자들은 자칫 중요한 대사나 행동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끊임없이 중요한 서사와 감정을 반복해서 복기해 주어야 했죠.”
속마음 자막과 방백은 통상 드라마에서 쓰이는 내레이션이나 혼잣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요즘 드라마 시청자들은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예전 드라마들이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유추해보는 재미를 추구했다면, 최근에는 그 감정들을 쉽게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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