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최근 부진의 연속이었던 게임업계가 반등 혹은 침체를 판가름할 중요 분기점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올 하반기 주요 신작들을 비롯해 다양한 일정들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 성과에 따라 향후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요 관건으로는 신규 시장이 꼽힌다. 그간 새로운 판로를 찾아왔던 주요 기업들의 결과물들이 베일을 벗는다는 점에서다. 모바일 일변도를 벗어나 북미·유럽 등 서구권 시장을 노린 PC·콘솔 타이틀 출시가 예정돼 있고, 한한령 이후 닫혀있던 중국 시장이 일부 개방되는 만큼 이들의 성과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중국 시장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엇갈린 예상들이 나온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나, 무조건적인 흥행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다. 최근 한-중 관계 경색으로 인한 한한령 리스크보다도 이 부분에서 더욱 큰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화두인 생성 AI의 도입이 개발 환경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딩을 비롯해 일러스트 등 개발 일선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를 콘텐츠 분야에 투자해 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아이돌 등 디지털 휴먼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각사의 ‘개발 혁신’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반등이냐, 침체냐
지난해부터 국내 게임업계는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라이브 게임들의 매출 반등과 신작 흥행이 겹친 넥슨이나 ‘로스트아크’의 글로벌 흥행을 이끌어낸 스마일게이트, 어느 정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크래프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N사(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영업이익 합산액은 1조4455억원으로, 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스마일게이트가 기록한 1조5704억원을 밑돌았다. 넷마블이 지난해 108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영향이다.
지난 1분기에도 다수 게임사들의 실적 둔화가 엿보였다. 엔씨소프트는 매출 4788억원, 영업이익 816억원 등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9%, 67% 줄어든 실적을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카카오게임즈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6.5%, 73.1% 감소했다. 넷마블과 위메이드도 각각 282억원, 46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를 지속했다.
다만 2분기는 주요 기업들의 출시작 성과가 온기 반영되는 시점인 데다 하반기에도 주요 라인업 출시가 예정된 상태다. 반등에 성공할지, 혹은 침체기가 계속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지난 1월 위메이드는 ‘미르M’의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4월 출시된 ‘나이트크로우’도 국내 매출 최상위권에 올랐다. 컴투스도 3월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을 해외 시장에 선보였으며,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2’와 컴투스홀딩스 ‘제노니아’도 지난달 출시됐다. 이달 25일에는 카카오게임즈의 ‘아레스: 라이즈 오브 가디언즈’가 출격 예정이며, 넷마블도 26일 ‘신의 탑: 새로운 세계’를 필두로 3종 라인업을 연내 선보일 방침이다.
대작 앞세운 해외진출 릴레이
특히 모바일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국내 게임산업의 무게추가 PC·콘솔로 급격히 옮겨오면서, 이 부분에서의 성공 여부가 각 게임사들의 실적 향방을 결정할 중요 변수로 분류된다.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 둔화로 인해 2021년 이후 국내 게임사들도 글로벌 시장에 맞춰 플랫폼 다변화에 나섰고, 최근 들어 그 결과물들의 출시가 임박한 것이다.
스마일게이트RPG가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스마일게이트RPG는 지난해 1774억원의 해외매출을 거두며 100억원 수준이었던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 ‘로스트아크’의 북미·유럽 출시 영향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최근 중국 출시일정까지 예고되는 등 추가적인 성과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6월 28일 글로벌 동시 출시 후 하루 만에 스팀 내 유료게임 기준 글로벌 판매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지난 8일 기준 누적 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는 넥슨 패키지 게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며, 스팀 동시 접속자 수는 지난 9일 기준 9만8000명에 이르렀다.
올해 네오위즈의 ‘P의 거짓’과 엔씨소프트 ‘쓰론 앤 리버티(TL)’ 등이 출격을 앞둔 상태이며, 펄어비스의 ‘붉은사막’과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도 내년 출시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P의 거짓’은 지난해 게임스컴 어워즈에서 국산 게임 최초로 3관왕에 올랐으며, 최근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도 ‘인기 출시 예정 제품’과 ‘가장 많이 찜한 출시 예정 게임’ 1위, ‘일일 활성 체험판 플레이어 수’ 2위에 올랐다. 엔씨소프트도 아마존게임즈와 ‘TL’의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을 맺는 등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산 게임의 글로벌 PC·콘솔 시장 진출은 신규 상장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스트아크’ 흥행의 주인공인 스마일게이트RPG는 최근 주관사 선정을 완료했으며, 시프트업도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딘’의 개발사 라이온하트스튜디오도 내년에 IPO를 재차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콘솔을 메인 타깃으로 하는 루트슈터 게임 ‘프로젝트S’ 등의 개발 소식을 공개한 바 있다.
변수 가득한 시장, 중국
지난해 말부터 판호 발급이 재개되며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중이다. 이미 ‘에픽세븐’이 현지 서비스를 시작해 주목할 만한 초반 성과를 거뒀으며, ‘로스트아크’를 비롯해 ‘블루 아카이브’ 등도 각각 7월 20일과 8월 3일로 출시일을 확정해둔 상황이다.
다만 최근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등 외교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국내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한령’ 부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미 판호를 발급받은 게임이라 해도, 정부 차원에서의 한국 콘텐츠 규제를 비롯해 중국 이용자들의 보이콧 등 서비스 과정에서 차질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2020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출시 잠정 연기가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현지 퍼블리셔인 텐센트 측은 게임 과몰입 관련 시스템 정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가 원인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중국 정부에서 게임산업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는 점을 들어 중대한 리스크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간의 규제로 인해 현지 게임산업이 크게 위축된 만큼,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외교관계와는 별개로 외산 게임 수입을 더는 막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관련업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신한투자증권 강석오 연구원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중국 현지 개발사 및 퍼블리셔들의 실적이 크게 감소하고 구조조정을 거쳤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의 회복을 위해서 한-중관계와 별개로 외산 게임의 수입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한국 주식시장의 우려만큼 중국 현지 분위기는 심각하지 않으며, 한-중 리스크가 부각되기 시작했던 4월 중순 이후 텐센트, 요스타를 비롯한 중국 퍼블리셔들의 한국 게임 출시 프로세스는 정상 진행되고 있다”고 봤다.
중국 시장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게임 자체의 경쟁력 확보가 더욱 큰 주안점으로 부각된 상황이다. ‘에픽세븐’과 ‘블루 아카이브’ 등 수요층이 확고한 서브컬처 장르와 달리 주력 장르인 MMORPG의 경우 현지 시장에서도 경쟁이 심화된 상태라 무조건적인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검은사막 모바일’의 예상 밖 부진을 지켜본 다른 국내 게임사들은 앞다퉈 게임 재정비 등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콘텐츠 현지화도 중요한 이슈로, 현지 규정이나 이용자 정서에 맞춘 콘텐츠 수정에 신경쓰는 한편으로, 국내 이용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는 측면도 있다. 최근 ‘로스트아크’에서 발생했던 중국 리소스 논란은 거대 해외 시장을 잡는 데 집중하다 자칫 ‘집토끼’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확 바뀌는 개발환경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최근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생성 AI가 게임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리츠증권 이효진 연구원은 생산성 증대와 소비자 잠재효용 증진 측면에서 AI 도입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챗GPT의 경우 목적에 맞는 질문만 있다면 그 결과물을 게임 개발 내 초벌 코드로 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미지 생성 AI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의 경우 키워드나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만들어내 게임개발에 필요한 원화 등을 대신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일러스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디자인팀이 3~4일을 작업해야 하지만, 생성 AI는 단 몇 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니티는 지난 3월 자사 엔진에 챗GPT를 도입했으며,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단순 작업을 대신해줘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는 반응이나 “기능 검색 등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후기가 나온다. 올해 초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AI 일러스트 사용 논란이 발생했던 가운데, 개발사인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 자신의 SNS에 스테이블 디퓨전과 개인 자가학습 모델을 이용한 AI 일러스트 작업물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생산성 개선은 곧 소비자 후생 증진으로 연결된다. 생성 AI 도입으로 인해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줄어들고, 게이머들에게 더욱 많은 선택지를 부여하는 등 자유도가 높아지며 산업 콘텐츠가 풍부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2지선다형과 같은 고정된 선택지에서 벗어나 게이머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게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배가되며 산업의 수요를 크게 증대시킬 수 있다”며 “산업의 병목 구간이던 개발시간 단축 및 장르의 다변화는 산업의 신규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주요 기업들의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휴먼’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3월 ‘GDC 2023’에서 김택진 대표의 디지털 휴먼을 선보였으며, 크래프톤은 지난해 7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버추얼 인플루언서 ‘위니’를 공개했고, 넷마블의 버추얼 아이돌 그룹 ‘메이브’도 올해 초 데뷔했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엔씨소프트 이제희 CRO(최고연구책임자)는 “드라마를 예시로 든다면, 출연하는 배우의 역량이 뛰어날수록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아지고 제작에 드는 비용과 노력이 적어질 것”이라며 “게임 내 캐릭터와 게임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고도화된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곧 모든 서비스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비용과 노력은 절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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