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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 ‘글로벌 표준’… 거침없는 테슬라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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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자체 급속충전 규격인 NACS가 적용된 ‘슈퍼차저’ 충전소(아래)와 가까이서 본 NACS 케이블. [뉴시스, 테슬라 제공]
테슬라의 자체 급속충전 규격인 NACS가 적용된 ‘슈퍼차저’ 충전소(아래)와 가까이서 본 NACS 케이블. [뉴시스, 테슬라 제공]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슈퍼차저’ 네트워크만 따로 평가해도 1000억 달러(약 130조4000억 원) 미래가치가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향후 테슬라가 자체 에너지 수급망까지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주요하게 반영됐다. 테슬라는 이미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저장해 공급하는 ‘메가팩 프로젝트’를 통해 일부 슈퍼차저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조나스 애널리스트는 “충전소에서 필요한 전력을 대부분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저렴하게 조달하면 향후 10년간 테슬라가 충전 인프라 시장에서 지배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의 충전 규격이 ‘글로벌 대세’로 확산되고 있다. 그간 테슬라는 미국, 유럽연합, 한국에서 급속충전 방식으로 널리 채택한 DC 콤보 방식의 CCS(Combined Charging System)가 아닌, 자체 개발한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 규격을 고수해왔다. 최근 테슬라의 NACS 규격을 채택하겠다고 나선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부터 전기차 브랜드까지 다양하다. 미국의 대표 완성차업체 포드와 GM을 비롯해 스웨덴 볼보가 NACS 규격 도입 방침을 밝혔다. 테슬라 대항마로 일컬어지는 미국 전기차업체 리비안도 NACS 규격 채택을 결정했다. 다국적 자동차그룹 스텔란티스와 독일 폭스바겐 등도 NACS 규격 채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켄터키주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으로 전기차 충전 업체에 NACS 플러그 설치를 사실상 의무화했고 텍사스, 워싱턴, 캘리포니아, 아이오와, 미시간주 등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테슬라, 자체 에너지 수급망 확보할 듯

테슬라가 글로벌 전기차 충전 규격의 표준 지위를 얻게 되면 그에 따르는 부가가치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전기차 판매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충전 인프라를 통한 안정적 수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미 정부가 충전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돈만 50억 달러(약 6조5000억 원) 규모”라며 “미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전기차 충전 산업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프로그램(NEVI)’에 따라 2022~2026년 매년 약 10억 달러씩 총 50억 달러를 전기차 충전 기반시설 확충에 투자할 계획이다. 자국 내 고속도로 약 80㎞마다 급속·초급속 충전소를 총 50만 개 구축하는 게 뼈대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4월 발표한 탄소배출 기준 강화 방침에 따라 미국 내 전기차 비중도 지난해 5.8%에서 2032년 67%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과 그 후방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충전 시장이 덩달아 커지는 것이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테슬라가 충전기 규격 표준의 자리까지 차지하면 전체 비즈니스 모델의 부가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보편적인 전기차 충전 방식은 전원(電源)과 차체를 플러그로 연결해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접촉충전, 즉 유선충전이다. 과거 휴대전화처럼 배터리째 바꾸는 배터리 교환 방식, 전자기를 유도해 전력을 전달하는 무선충전 방식은 아직 기술적·경제적 한계로 널리 쓰이지 않고 있다. 유선충전은 다시 직류로 전기를 전달해 충전 속도가 빠른 급속충전과 교류 방식이라 비교적 속도가 느린 완속충전으로 나뉜다.

큰 틀에서 원리는 유사하지만 이제까지 국가별·기업별로 구체적인 충전 규격은 통일되지 않았다. 테슬라 NACS 규격에 왕좌를 위협받기 전 미국 시장에선 CCS가 대세였다. 다른 방식보다 고출력 충전이 용이해 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다. 다만 통신 방식의 특성상 주파수 간섭이 일어나면 배터리 잔량 등 충전 정보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 흠이다. CCS 중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CCS1, 유럽은 CCS2가 대세였다. 일본의 경우 차데모(CHAdeMO) 방식을 채택했는데, CCS와 비교해 주파수 간섭 없이 원활한 충전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다만 충전 속도가 느린 것에 비해 크기가 크고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다. 중국은 GB/T라는 자체 규격을 고수하고 있다. 설치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과 충전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공존한다.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선임연구원은 3월 ‘전기차 급속충전 규격 표준화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제하 보고서에서 “초기에는 가장 먼저 개발된 차데모의 시장점유율이 높았으나 일본이 전기차 및 충전 기술 개발에 소극적인 사이 미국·유럽·한국의 CCS가 역전했다”면서 “차데모 개발 및 보급에서 주축이던 닛산이 최근 아리야(전기차 모델) 급속충전 표준을 CCS로 전환했는데, 이는 차데모의 열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반기를 든 테슬라가 판세를 뒤바꾼 셈이다.

NACS 규격 표준화에 현대차 고심

현대차·기아로 대표되는 한국 완성차 브랜드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주요 글로벌 브랜드가 NACS 규격에 동참하고 있지만, 경쟁사인 테슬라가 주도하는 질서에 쉽사리 따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은 6월 20일 투자자, 증권가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CEO 인베스터 데이’ 행사에서 NACS 규격 도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큰 화두이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고객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대차 전기차 모델은) 800볼트(V) 초고속충전으로 설계돼 있고, 500V인 테슬라 슈퍼차저에 당사 차량을 연결해보면 현재 기준으로는 오히려 충전 속도가 느려진다”고 답했다. 김흥수 현대차그룹 글로벌 전략 오피스(GSO) 담당 부사장은 “테슬라 충전 인프라에 합류하면 당장 많은 충전소를 활용할 수 있지만, 과연 그에 종속되는 것이 중장기 전략 면에서 유효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NACS 방식으로 충전할 경우 CCS에 비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속도가 느려지는지 현대차그룹 차원의 공식적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온도 등 주변 환경 영향을 많이 받는 전기차 충전 특성상 일대일 비교가 어려운 점도 있다. 빠른 충전 속도를 앞세워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확대해온 현대차 전략이 테슬라 규격의 낮은 성능 탓에 발목을 잡힐 수 있어 보인다.

당장 글로벌 전기차 충전 규격이 NACS 독주체제로 수렴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NACS 규격의 약진에는 양가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 완성차 브랜드가 NACS 규격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미국 정부가 테슬라 슈퍼차저에 CCS 충전기를 함께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NEVI 사업에 따른 충전 인프라 보조금을 받기 위해 테슬라는 최근 미국에서 타사 전기차에도 슈퍼차저를 개방하는 등 CCS와 호환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 시장에서 NACS 일변도 전략을 취하던 테슬라가 도리어 DC 콤보 방식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가 글로벌 충전 규격의 왕좌를 차지해도 한국 자동차업계에 결정적 타격이 되진 않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자동차 산업계 한 전문가는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아 자체 충전 표준을 개발, 보편화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지금까지 글로벌 대세를 따르는 전략을 택했다”면서 “앞으로도 중요한 부분은 세계 시장 변화를 지켜보면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분석이다.

“기존 CCS나 테슬라 NACS나 결국 미국 중심의 표준 규격이다. 전기차 도입 초기 한국은 미국형, 유럽형, 일본형 충전 규격을 모두 사용했다. 그러다 미국 CCS가 다른 규격을 압도하기 시작하자 국내 브랜드도 잇달아 채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CCS와 NACS가 경쟁해서 이긴 표준이 미국, 더 나아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중국 규격을 채택할 것이 아닌 이상, 그 대결 추이를 지켜본 후 승리한 규격을 따르면 될 일이다.”

“도로 달리면 자동 충전”… 전기차 ‘동적 무선충전’ 시대 오나
노르웨이 기업 ENRX가 시험한 동적 무선충전 시스템. [ENRX 제공]
노르웨이 기업 ENRX가 시험한 동적 무선충전 시스템. [ENRX 제공]

충전패드가 매설된 도로를 달리면 전기차가 자동으로 충전되는 ‘동적(動的) 무선충전’ 시대가 개막되고 있다. 미국 5개 주(미시간, 유타, 인디애나,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와 독일, 스웨덴, 이스라엘에서 이 같은 ‘전기 도로’가 이미 현실화됐거나 현재 건설되고 있다.

현재 보편화된 충전 방식은 전기차를 급속·완속 충전기에 유선 연결해야 한다. 완충까지 짧아야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리는 데다 특정 장소에 차량을 주차해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충전 인프라를 짓는 데 적잖은 비용과 공간도 필요하다. 이와 달리 동적 무선충전은 도로에 매설된 충전패드 내부에 자기장이 형성되면 전기차 하부 수신기로 그 에너지를 전달받아 배터리가 충전된다. 이미 보편화된 스마트폰 무선충전과 기본 원리가 같다.

최근 동적 무선충전 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20년 텔아비브에 700m 길이의 무선충전 도로를 설치하고 전기버스를 운행했다. 이 같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스타트업 ‘일렉트리온’이 미국 미시간주 등 해외에서 동적 무선충전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이외에 노르웨이 ‘ENRX’, 미국 ‘위트리시티’ 등 기업이 전기차 동적 무선충전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도로에 무선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ENRX는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1.6㎞ 길이의 무선충전 전기 도로를 구축하는 사업을 수주했는데, 공사비만 약 1360만 달러(약 177억5000만 원)로 알려졌다. 현재 판매되는 전기차에는 동적 무선충전을 위한 장비가 없어 이 또한 차주가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동적 무선충전 기술 종주국은 한국이라는 것이다. 2009년 KAIST 연구팀은 세계 최초 동적 무선충전 전기차인 ‘온라인 전기자동차(OLEV)’를 개발했다. OLEV는 서울대공원 ‘코끼리 열차’ 등에 시범 도입됐지만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당시 OLEV 개발을 주도한 조동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전기차가 전체 차량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전기 도로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면서 “10년 내 동적 무선충전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는 동적 무선충전의 장점은 전기차 운전자의 편리함은 물론, 높은 사회적·경제적 효용이다. 주행 중 손쉽게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 개수와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결국 전기차 무게를 줄여 가격도 낮출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적 측면에선 전기차 충전소를 마련하고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높은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주요 도로 위주로 충전패드를 깔아 전기차가 주행 중 충전할 수 있게끔 하고, 소규모 도로에선 전기차 자체 배터리로 움직이게 하면 된다”고 답했다. 무선전력 기술 전문가인 김남 충북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서울 시내의 경우 버스전용차로에 동적 무선충전용 패드를 설치하는 방안이 현실성 높아 보인다”면서 “지정된 노선으로만 다니는 버스 특성상 한정된 공간에 배선을 설치하면 돼 경제성이 확보되고 도심 매연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7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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